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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나그네 인생길에 무엇을 그리 챙기십니까? (시90:1-17)

318호 · 2006-03-29

인생(人生)의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삶이 주는 고뇌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인생이 걸머지고 가기 힘들 정도로 무거울 것이며, 헤어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수렁 같을 것입니다.

왜 인생이 이렇듯 무겁고 힘들고 어려울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 모든 것을 걸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을 쌓느라, 이 땅에 유토피아를 쌓느라 그러는 겁니다. 남보다 큰 명예, 남들보다 많은 부귀를 얻고자, 그것을 지키느라 애쓰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바로 앞에서 그랬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야곱이 제대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이 땅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잠시 여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여행지에서 별 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에 힘들고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저는 일 년의 반 이상은 선교 여행을 다닙니다. 여행을 떠날 때 저는 짐을 가능한 줄입니다. 짐이 많으면 짐에 치여 다니기 힘들고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것들은 절대 가방에 넣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여행길일진대 우리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여행 가방이나 배낭 안에 구겨 넣으려고 애를 쓰고 있고, 결국 그것에 눌려 여행의 목적을 잊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 땅에 살 것처럼, 언제까지나 죽지 않고 살 것처럼 아등바등,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도 여행은 끝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하루살이를 보셨습니까? 하루살이는 대체로 하루 동안 살다 죽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는 하루라는 일생을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 않습니까? 뭐가 그렇게 분주한지 빙빙 돌고, 교미하느라 정신없고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우리가 보면 극히 짧은 하루일뿐인데 말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하루살이 일생처럼 짧디 짧습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3,4). 그런데 우리도 마치 영원히 이 땅에 살 것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다 죽습니다.

아담이 사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권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손을 댔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먹으면 분명히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마귀는 아담에게 절대 죽지 않으니 염려 말고 먹어보라고 꼬였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말대로 아담이 하와와 함께 선악과를 먹었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을 줄 알고 아담이 눈을 질끈 감고 선악과를 먹었는데 안 죽었다는 말입니다.

정말 사단의 말이 옳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그의 아들인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아담은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아내와 동침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 이름을 셋, 곧 ‘하나님이 내게 아벨 대신에 주신 씨’다 했으며, 셋이 다시 아들을 낳으니 에노스라 하고 그 때에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창세기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노스’ 라는 뜻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 라는 뜻입니다. 곧 죄의 삯으로 죽음이 왔고, 우리는 죄인의 후손인고로 죄인이요, 그래서 결국 죽을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다 에노스입니다.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러야 할 이름은 우리 죄를 사해주실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가 영원히 사는 존재로, 죄인이 의인으로, 그리고 객사할 수밖에 없던 존재들이 여행이 끝나면 돌아갈 아름다운 집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제가 집회 관계로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도 집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호텔시설이 아무리 최상이라 해도 집보다는 편치 않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실감하곤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천국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날을 사모하며 가는 겁니다. 여행이 끝난 후 돌아가 아버지와 한 상에 앉아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아버지께서 해주는 한 마디 ‘수고했다’는 말을 기다리며 오늘을 사는 겁니다.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에 ‘아름다웠노라’고 아버지 가슴에 안겨 말씀드릴 그 날을 그리며 사는 겁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일회용 물품에 불과합니다. 명예와 부귀, 그것들은 잠시 우리를 편하게 할 일회용품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려고 혈안이 되고,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도, 세상 것으로 욕심이 차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WBC 세계 야구 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세계 강국들을 물리치고 4강에 올랐습니다. 이 쾌거에 온 국민은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외쳤고, 세계 또한 우리나라를 달리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인식 씨는 ‘어떻게 했기에 세계 4강에 들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제가 3년 전에 뇌경색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는데 그 때 하나 깨달은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는 투수와 타자에게 온갖 제스처로 사인을 보내느라 분주했지만, 이제는 다 맡깁니다. 마음을 비우고 그들을 믿어주니 그들이 알아서 치고 던집디다.”

백 번 옳은 말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삶의 무게 줄어들고, 고뇌도 사라집니다. 아니 텐트 안에 세상 온갖 짐을 다 들여놓으면 어떻게 다리 펴고 자겠습니까? 좁아터졌는데요. 우리 인생은 잠시 있다 접을 텐트입니다. 거기에 많이 채우면 뭐 하겠습니까? 거기에 미련을 두면 뭐 하겠습니까? 다 놓고 갈 것들인데요.

우리에게 부귀나 명예는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도구 말입니다.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핏대 터지게 싸우지 않아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분량대로 다 채워주시니 우리 이제 여유를 갖고 살아봅시다. 어느 부모가 여행 가는데 빈손으로 보냅니까? 여행하다 부모님께 전화하면 부족한 만큼 온라인 계좌로 다 넣어주시지 않습니까? 기도하면 우리 아버지가 다 채워주시니 여행이나 잘 합니다. 여행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합시다.

어떤 사람은 걸어서 여행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고, 어떤 자는 비행기나 자동차로 여행을 합니다. 다 자기에게 합당하게 이 세상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를 탔든지, 걸어가든지 결국 여행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같습니다. 조금 불편하게 여행하면 어떻습니까? 그것 때문에 불평한다면 어디 즐거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삽시다. 길어야 7,80인 생애동안 늘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늘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늘 기뻐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삽시다. 이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할렐루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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