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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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어디에 네 마음을 빼앗겼느냐?(삼하15:1~6)

313호 · 2006-02-22

제 둘째 아들 녀석 이야기입니다. 한 때 녀석은 외국처자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제게 그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 여자가 아니면 결혼 안 하겠다.’, ‘그 여자와 결혼을 못하면 죽어버리겠다’고 아비인 제게 협박을 했습니다.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니 아비고 뭐고 보이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왜 그 결혼이 안 되는지에 대해 수없이 말해주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습니다.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결혼을 반대하는 아비가 야속하기만 한데 아비 말이 귀에 들릴 리 없었겠죠. 그렇게 참 오랫동안 결혼 문제로 잡고 잡아당기는 씨름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좀 지나니까 녀석도 나름대로 생각해 본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이제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제게 말해온 것을 보면 말입니다.

마음을 빼앗기면 오직 그것에만 관심이 있게 됩니다. 아들 녀석처럼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예쁜 옷을 봐도 ‘저건 그녀에게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녀와 함께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어쩌다 몸이 아파도 ‘이럴 땐 그녀가 옆에 있었으면…’ 하게 됩니다. 만물과 만사가 다 사랑하는 여인과 연결되는 법입니다.

물론 저도 젊은 시절에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물불 안 가리던 시절이 있었고, 명예욕에 불타 국회의원이 되어 보겠다고 정치판에 마음을 빼앗겼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예수를 만나고 나서 제 마음 모두를 예수께 다 빼앗겼습니다. 정말 예수께 온 마음을 드리고 나니 이를 반대하던 어머니를 떠나는 일에 망설이지 않았고, 처자와도 이별에 매달리지 않았으며, 교단의 압력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 마음이 몽땅 예수께 있으니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귀에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제게 오는 백문백답(百問百答)에 모두 ‘예수’로 답하며, 천문천답(千問千答)에도 오직 ‘예수’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치 코카콜라 사장이 자기를 찌르면 콜라가 나온다는 이야기나 일맥상통합니다.

오늘 본문의 압살롬은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고자 다윗궁으로 가는 길 곁에서 백성들이 다윗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가는 것을 막고 자신이 재판에 관여하고는 그들에게 선처를 베풀어 백성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다윗에게 향하던 마음을 도적질 한 것입니다.

가끔 예배를 드리다보면 압살롬에게 재판을 의뢰하는 백성들을 보게 됩니다. 분명 ‘아멘’도 하고, 찬송도 따라하는데 마음이 딴 곳에 가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몸은 교회에 와 있는데 마음은 집에 묻어준 꿀단지에 가있는 사람 말입니다. 이것이 악한 마귀의 궤계입니다.

마치 다윗에게 향할 마음을 도적질 한 압살롬처럼,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을 다른 곳으로 팔리게 하는 것이 마귀의 작전인 것입니다. ‘얼마든지 교회는 가라. 그러나 네 마음은 세상에 두고 가라’ 이겁니다. 이런 자의 예배는 마치 비 없는 구름과 같고, 열매 없는 가을 나무 같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가납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빼앗기면 몸을 주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아들, 딸을 낳게 되지요. 당신은 누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죄악과 사망이라는 자식을 낳게 되고, 예수께 마음을 빼앗기면 생명과 축복의 자녀를 낳게 됩니다. 당신은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습니까? 물론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겨야 열중하게 되고 성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그 예로 발람 선지자를 들 수 있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발락이 주는 명예와 돈에 마음을 빼앗겨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러 갑니다. 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가 빼어든 칼을 보고 나귀가 길을 돌리려하자 발람은 나귀를 채찍으로 때리며 길을 재촉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까지 하셨으나 발람이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발람을 눈을 여시사 그제야 칼을 든 여호와의 사자를 본지라, 발람이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일을 돌이켜 회개하고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과 예언을 하게 됩니다.

돈과 명예에 마음을 빼앗기니 선지자도 예외 없이 넘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던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순간 밧세바에게 마음을 빼앗기니 그녀를 취하기 위해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도 베드로나 요한,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께 마음을 빼앗기니 예수를 위해, 그 분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함에 목숨도 아끼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마음을 빼앗겼습니까? 세상적인 명예입니까? 돈입니까? 아니면 이성에게 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에서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팥죽 한 그릇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바랍니다. 팥죽 한 그릇은 당장 배고픔을 막아줄 수 있지만 그것은 순간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명분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되레 고난을 가져다주는 것 같지만 그것은 축복이며, 그 축복은 영원하고 참으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며, 돈도 사랑도 영원하지 않고 변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은 환난과 핍박을 가져오는 것 같으나 결국은 영원한 승리요, 영생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2~4).

마귀는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들을 우리에게 내밀어 유혹하며 우리의 마음이 예수를 떠나 세상적인 것에 두게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처럼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면 우리 안에 있던 에덴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평화와 풍성함과 화평과 안전함이 떠나고 말 것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 남이니라’(잠4:23).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을 빼앗는 압살롬을 잡아냅시다. 세상의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둡시다. 세상 것이 가득차면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실 곳이 없어집니다. 마치 탄생할 예수가 누우실 곳이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면 세상 것들은 보너스로 더불어 얻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할렐루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네 마음에 예수가 들어가실 자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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