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11)
마태복음 5:38~48 예수 바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 바보’, 어느 책에서 우연히 ‘예수 바보’라는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참 무례한 제목이라고 생각하고 호기심에 글을 끝까지 읽었는데, 당돌한 제목과는 이야기가 아주 다르다.
어느 대학교수가 자신의 명패를 ‘예수 바보’라고 만들어 자기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자기 이름이 ‘예수 바보’란다. 자기는 예수 때문에 바보가 되었단다. 예수님 때문에 바보가 되다니... 요즘 세상에 누가 달라는 대로 다 주며, 누가 겉옷 달라는데 잠깐 기다리라며 속옷까지 벗어 주겠는가. 수원까지만 함께 가자는데 누가 대전까지 함께 가겠는가.
누가 십만 원 빌려 달라는데 이십만 원을 빌려 주겠는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자기에게 욕설을 퍼붓고 속여 사기 친 자를 위해 축복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겠는가, 조금 어딘가 부족하지 않고서야. 그런데 예수께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고 계신다. 멀쩡한 사람이, 똑똑하기로 내로라하는 사람이 쓸개 빠진 사람처럼 이렇게 살 수 있나? 그래서 그 교수는 아예 내놓고 나는 예수 때문에 바보로 살기로 작정했노라고 이름을 ‘예수 바보’로 바꾸어 버렸다고 하는 이야기다. 매일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 그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나를 헐뜯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자에게 따지고 싶고 변명하고 싶은 그 마음을 억누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를 끌어안고 사랑할 수 있는가? 바보나 가능한 일이다. 나도 예수 바보가 되어보고 싶다. 거룩한 바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목사님은 정말 예수 바보다. 그것도 아주 지나친 바보다. 예수 때문에 언론에서 뺨을 맞아도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지식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온갖 모욕과 핍박 앞에서도 오히려 잔치를 배설하고 기뻐하시니 정말 바보다.
그런데 그 바보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높이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 바보’는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하나님 자녀의 상(像)인가 보다. 자녀는 아비를 닮게 되어 있다.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을 닮아 비록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바보처럼 사는 것 같지만 세상이 알 수 없는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취하는 삶이 아름답지 않은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나에게 호감을 갖거나,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믿지 않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 하신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마음을 갖고 살면 하나님께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겠는가. 하나님은 욥을 사단 앞에서 자랑하셨다.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자녀들을 가끔 본다. 그래서 부모를 팔불출로 만드는 자녀가 많다. 아내와 자식 자랑하는 자는 팔불출이라고 했는데 우리 주님도 많은 믿음의 자녀들을 수없이 자랑하고 계시고, 지금도 그렇게 하시고 싶어 하신다. 자랑할 수 있는 아내와 자식을 둔 자는 복이 있는 자다. 우리를 자랑하여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