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31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계획이 없는 자는 망하기로 계획한 자다(롬10:9~15)

310호 · 2006-02-02

저는 2008년까지 해외집회를 다 계획해 놓았습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일을 처리하다가는 집회가 얽히고설키게 될 것이고, 준비미비로 집회가 엉망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것에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기에 우리교회가 흔들림이 없이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위한 계획도 가지고 있고, 아들들에 대한 계획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치를 향하여 편안함을 버리고 달려가고 있으며, 아들들에게도 그것을 위해 채찍질과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계획이 없는 자는 망하기로 계획한 사람이다.’ 오늘 하루의 계획이 없는 자는 대충 하루를 때울 것이고, 일주일의 계획이 없는 자는 일주일을 허비하게 되고, 한 달의 계획이 없는 자는 무의미하게 한 달을 버리게 되며, 일 년을 계획 없이 사는 자는 허무하게 한 살만 더 먹게 되는 꼴이 되고, 평생 계획을 하지 않는 자는 일생을 낭비하여 결과적으로 무가치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당신의 올해 계획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계획하셨습니까? 선뜩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2006년을 망하기로 계획한 사람입니다. 계획이 무엇입니까? 첫째, 계획은 삶의 방향을 잡아줍니다. 달려갈 목적지, 즉 목표로 달려가게 해줍니다. 방향이 없이 달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마치 표적 없이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아 위험한 열정이 될 수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 점을 목표로 두지 않고, 자기 내키는 대로 아무 방향이나 42.195km를 빨리 달린다고 우승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2백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는 모세, 그는 40년간을 광야에서 이리저리 헤매었지만 그의 목표인 가나안을 잊지 않았기에 백성들의 불평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명문대를 가겠다고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가 학생을 이끌어서 밤새워 공부하게 하고, 대기업이 되겠다고 하는 목표가 사주와 사원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어 파업 없는 기업으로 이끌고 가게 됩니다. 즉 목적이 이끄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계획이란 바라보는 것입니다. 계획이 있는 자는 그 날을 동경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친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1~3). 계획이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만져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미래를 바라봄으로 그것을 위해 달려가게 합니다. 바다를 동경한 자가 배를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뭇별을 보며 자신의 후손들이 번성함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그것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았고, 또한 하나님의 계획을 오해하여 성급히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은 까닭에 심적 갈등을 겪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결국 그 약속대로 열국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야곱에게는 금의환향하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밤마다 고향하늘을 보며 그날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삼촌에게 얼룩이 있는 양을 자신에게 달라했습니다. 삼촌의 허락 하에 그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것을 양 떼를 향하게 하여 양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게 하니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다롱한 새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삼촌보다 많은 양 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계획이 야곱을 움직이게 했고, 일을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저도 21년 전 철산리 지하교회에 500석의 좌석을 구비해놓고, 그것이 꽉 차는 것을 그렸습니다. 정말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곳이 성도들로 차고 넘쳐 이전해야 했었습니다. 또 저는 ‘세계교구’라는 글을 제 사무실에 써놓고 그것을 매일 읽으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세계로 나가 설교하는 제 모습과 갈보리 깃발을 휘날리며 복음을 전파하는 예루살렘교단을 늘 마음에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2000년 인도네시아 집회부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고, 지금은 세계 70여 개국에 말씀을 전파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셋째는 계획은 우선순위를 정해줍니다. 밀가루에 팥만 넣었다고 붕어빵이라고 합니까? 붕어빵틀 속에 들어가야 붕어빵이 되는 겁니다. 즉 계획은 흐트러지기 쉬운 생활의 틀을 정렬해 주어 무엇이 먼저인지를 알게 합니다. 아주 쉬운 예로 주부가 오늘 ‘대청소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잡으면 친구가 ‘차 한 잔 하자’는 전화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될 것이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의 올해 계획은 무엇입니까? 5년 후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계획이 섰다면 당신은 흥하기로 계획된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화가가 되기로 계획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유명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자신을 그려보십시오.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적인 미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그리고 학원에 등록을 하든, 개인레슨을 받든, 혼자 그림을 그리든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올해 단칸방을 면하고 아파트에 입주하기를 계획하셨습니까? 먼저 그림을 그리십시오. 몇 평의 아파트에 방이 몇 개나 있고, 그 안에 가구 배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며, 열심히 일을 하고 저축하면 꼭 이룰 것입니다. 올해 정계에 입문하기를 계획하셨다면, 먼저 여의도에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십시오. 그리고 주민들과 접촉을 하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교회가 올해 ‘1인 1명전도’를 계획했습니까? 그렇다면 교회가 배가 되어 차고 넘치는 것을 동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먼저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에게 본을 보이며, 입을 열어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광고하지 않으면 부흥이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계획이 있습니다. 바로 새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입니다. 그 날을 동경하고, 그 날의 상과 면류관을 그리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목표가 있기에 환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이 길을 가고 있고,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오직 주님 먼저, 예수 우선주의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러나 당신이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표를 따라 가다보면 난코스도 있고, 절벽도 있고, 늪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주저앉으면 우리의 계획은 다 허사가 되고 맙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8). 오뚝이 아시지요? 오뚝이처럼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뚝이는 흔들리기는 해도 절대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중심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으면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계획이 흔들리지 않고 당신 삶에 중심이 된다면 경험한 것들에 대해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단은 올해 ‘역사의 변두리에 서지 말고 역사의 중심에 서는 자가 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의 중심에 선 자신을, 단체의 중심에 선 자신을, 국가의 중심에 선 자신을, 그리고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자신을 그려야 하고,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은 뒤로 하고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앞에 장애물 때문에 주저앉지 말고, 앞에 산이 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말입니다. 험한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드는 법이거든요.

오늘 이렇게 기도합시다. “내 능력에 맞는 일거리를 주시지 말고, 일거리에 밎는 능력을 주십시오. 그래서 크게 꿈꾼 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할렐루야!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미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리 수 없다

31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교단소식
나눔의 지혜
구원의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