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
지난 주, 집회 차 간 미국에서 칼리닌그라드에서 온 티무르를 만났다. 그는 지난 영성세미나 때 내한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인기를 모은 가수다. 그런데 일행과 같이 식사를 하는데 유독 티무르가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왜 먹지 않느냐고 물으니 ‘20일 금식 중’ 이라고 했다. ‘무슨 일로 20일이나 금식을 하느냐?’로 내가 물었더니 능력을 받기 위해서라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금식은 문제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부르짖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조건 금식을 하는 자가 있다. 물론 금식의 위력은 대단하다. 금식은 흉악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로 이끌려가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어준다. 그러나 주님은 금식에도 때가 있고 법이 있다고 하셨다. 신랑과 같이 있을 때 금식하는 것이 옳겠느냐고 말씀하셨고, 금식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실제 이런 경우가 있었다. 어느 부인이 남편이 속을 썩인다고 금식에 들어갔다. 그런데 금식을 한다고 집안을 돌보지 않아 집안이 난장판이 되고, 남편은 거들떠도 보지 않아 그나마 가정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던 남편은 아예 가정을 떠나버렸다. 정말 지식이 없는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 여인은 같은 상황에서 집안을 꾸미고 자신도 열심히 가꾸며 남편에게 지극정성을 했더니 남편이 마음을 돌려 집으로 들어왔다. 어느 쪽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가.
금식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때와 방법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지식이 없어 내 백성이 망한다 한 것 아니겠는가. 부르짖을 때인지, 금식할 때인지 구분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