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중심에 서려면 생각부터 바꿔라(신28:1~14)
성공한 자를 따라가면 성공자가 됩니다. 역사의 중심에 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역사의 중심에 섰던 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2006년, 우리는 ‘역사의 변두리에 서있지 말고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한 해가 되자.’라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구호에 그치면 안 됩니다. 이것을 실천하여 우리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역사의 변두리에서 배회하는 삼류인생을 접고, 역사의 중심에 선 스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역사의 중심에 섰던 자들은 어떠했나를 살펴봅시다.
첫째, 그들은 마음의 기둥을 잘 세운 자였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섰다는 겁니다. 즉 그들은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였고, 미지근한 자가 아닌 열정적인 자였다는 것입니다. 몸의 직립이 갈비뼈에 있듯, 인생을 바로 서게 하는 것은 마음의 중심 아니겠습니까.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라함 링컨이 가난과 많은 실패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심중에 자신을 지탱해준 기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살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성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일어서 대통령이 되었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노예를 해방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12세에 갑판 사병에서 시작하여 제독에 오른 호레이쇼 넬슨. 그 역시 국가와 민족을 위한 헌신적인 투혼으로 존경받는 해군 제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20세에 영국 해군 역사상 최연소로 프리깃함 함장으로 기용돼 1794년 코르시카 칼비 지역 상륙 작전 시 오른쪽 눈을 실명했지만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1797년 캐너리 섬 점령 작전에서 오른팔을 잘리면서도 투혼을 발휘했고, 빈센트 봉을 점령하는 데도 결정적 공헌을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기둥이 바로 서면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자가 단체나 교회, 국가를 살리고 발전시킵니다.
둘째, 역사의 중심에 섰던 자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던 12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가나안을 보고 돌아왔으나 10명은 ‘우리는 그들에게 메뚜기 같다’라고 보고했고,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0명은 같은 수고를 하고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성경에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중심에 서려면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생각은 곧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경험이라고 했던 에디슨도 역사적 인물이 되었지 않습니까.
셋째, 그들은 기대하는 바가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처한 환경이나 처지에서 꿈꿀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고 달려간 자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요. 그러면 평생 팔자대로 살아야죠. 그러나 사다리 놓고 올라가면 되지 않습니까. 현대의 전(前) 회장인 정주영씨가 어떻게 대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었습니까.
배운 게 많았습니까? 가진 게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은 남이 가지지 않는 꿈이었기에 농사꾼이 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를 끝내 설득하고 대기업을 이룬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가 경수가 끊어져 희망이 전혀 없을 때에도 그는 자신을 통하여 만국이 설립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이뤘지 않습니까. 기대는 고목나무에서 꽃이 피게 합니다.
넷째,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거인 골리앗을 상대할 생각조차 못하고 떨고 있을 때에 어린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나갔습니다. 어리지만 역시 범인(凡人)들과는 다른 무엇이 다윗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떡잎부터 달랐던 그는 왕이 되었고, 왕의 족보를 타고 그리스도의 역사가 그려졌습니다. 기생 라합도 여자대장부였습니다. 여리고를 정탐하러 간 사람을 지붕에 숨겨두고는 여리고 왕 앞에 거짓말을 해낸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 여인을 기억하사 그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했습니다.
다섯째, 그들은 광고에 능한 자들이었습니다. 세계에 나가보면 우리 기업들의 광고물이 주요 거리를 다 점령하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LG, 그리고 현대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은 신제품을 널리 알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좋은 상품이 있다 해도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사장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기업들이 광고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광고의 위력이 그만큼 큰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그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유비가 제갈량의 초가에 몇 번을 찾아가도 그는 집에 없었습니다. 늘 조조군에게 패하는 자신들의 군대에 전군을 통솔한 군사(軍師)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갈량의 푸대접에 동행한 관우와 장비가 불평을 터뜨렸지만, 유비는 세 번씩이나 제갈량을 찾아갔습니다. 이에 감동한 제갈량은 유비의 군사(軍師)가 되어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물리치는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목적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자만이 역사를 쓸 수 있습니다. 한신이 시종잡배들 가랑이로 기어들어간 사건도 있지 않습니까.
일곱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방배동 이춘석이 세계의 이초석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가짜 목사요.’ 하고 소리치는 것도 오직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사도 베드로나 바울이 담대했던 것 역시 믿음 때문 아닙니까.
저는 역사의 중심에 섰던 자들의 일곱 가지 공통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역사의 중심에 선 많은 자들이 있었지만 단연 역사의 중심인 분이 있으니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마귀의 시험을 넉넉히 이기셨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이 우리와 다르셨으며,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을 기대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그의 제자들과 우리를 통해 자신을 널리 알리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수욕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믿고 그의 뜻에 따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우리도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이제 아무도 몰라주고, 신경도 쓰지 않는 변두리 인생을 마감합시다. 변두리 기업, 교회, 국가가 되지 말고, 역사의 중심에 서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인생이요, 기업, 교회, 국가가 됩시다. 변두리에서 살다가 도시 중심에 들어와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역사의 중심에 서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어라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 ‘너는 지배하고 다스리고 정복하고, 남에게 꾸어주며, 머리가 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터전이 되고, 위인들이 취한 공통점을 내 것으로 만든다면 분명히 당신도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공한 농사꾼은 씨앗부터 고른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