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딛전3:1~16)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의 한 장로가 야반도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성도들과 채무 관계가 감나무에 연 걸리듯 얽혔었는데, 자기 능력의 한계가 오자 가족들과 함께 밤에 줄행랑을 쳐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장로에게 돈을 빌려준 성도들이 저에게 떼로 몰려와 항의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장로로 세울 수 있느냐? 우리는 장로라는 것만 믿고 돈을 줬다. 그러니 목사님이 책임을 져라.’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세운 장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사죄하며 겨우겨우 사건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장로로 세운 것을 참 많이 후회했습니다.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도 한 명의 배신자가 있었다는 것으로 자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 임직을 두고 깊이 기도했습니다. 다시는 후회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더는 하나님께 맞을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직함을 주는 것은 그 사람만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단체 모두를 빨리 망하게 합니다. 제가 만일 사람의 비위나 맞추려고, 혹은 임직에서 빠지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날까봐 그냥 직분을 주면 저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그래서 저는 올 연말에 가지려고 했던 임직식을 내년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임직 명부에 오른 자들이 정말 자격이 있는 자인지, 결격사유는 없는지 다 조사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제가 세운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자인가’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려면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주일성수는 물론, 십일조와 첫 열매, 그리고 교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신앙의 기본도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둘째,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나 세상에서 귀감의 대상이요, 선망의 대상, 존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격적이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 교회의 장로요, 집사가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국무총리가 되려고 해도 국회에서 도덕성은 물론 사생활까지, 심지어 자녀들까지 다 따져 보고 동의해 주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직분인데 대충 겉만 봐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감투가 아닙니다.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하면 복이지만 감당치 못하면 저주라는 것을 안다면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가족에게 인정을 받는 자인가’하는 겁니다. 진정한 성공자는 가정에서 인정받는 자입니다. 목사가 가장 잘한 설교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아내나 자녀가 듣고 은혜 받는 설교가 가장 명설교입니다. 그만큼 인정받기 어려운 곳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는 가면을 벗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본심과 본색이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거든요. ‘우리 아빠는 대단해요’ 라고 자녀가 말했다면, ‘내 남편은 100점입니다’ 라고 아내가 말한다면 그는 교회의 직임자로 적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 스스로가 자신을 채점해 보십시오. 하나님께는 몇 점이나 되고, 외인(外人)들에게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으며, 가족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교회정도면 장로가 1,000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오랜 기간 사람을 흔들어보고 검증을 거친 후에야 장로로 피택합니다. 피택이 무엇입니까? 입을 피(被)와 가릴 택(擇)입니다. 가려서 입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정말 ‘아니오’가 없고, 오로지 ‘예’ 뿐입니다.
조만식 장로가 주일날 나라일로 손님이 찾아오는 바람에 예배시간에 조금 늦었습니다. 그가 예배당에 막 들어가 신발장에 신발을 넣으려고 하는데 주기철 목사님이 “조 장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시오.” 했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신발을 든 채로 그 자리에 섰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주기철 목사님은 “조 장로, 대표로 기도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기만한 죄와 우리 목사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죄와 우리 성도들에게 장로로서 본이 되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모든 성도들이 그의 기도를 듣고 모두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뵈뵈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고, 사도 베드로에게는 다비다가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에게 조만식 장로가 있었다면 제게는 고인이 된 송태찬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또 지금 세운 모든 장로들이 제게는 받침대요, 기둥입니다. 그런데 받침대가 빠져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건물의 기둥이 넘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어디에 내다놔도 영, 혼, 육에 손색이 없는 분들입니다. 교회를 대신해서, 저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자들이라 저는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행복한 목사라는 겁니다.
교회의 직분은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직분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직분이란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이행하지 못하면 추궁을 받습니다. 학교에서 반장이 좋기는 하지만 잘못하면 반장이 제일 먼저 혼나지 않습니까. 일꾼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일이 좋아서, 일에 미친 자가 진짜 일꾼입니다. 주의 일하는데 장로가 아니면 어떻고, 권사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하나님 일이 좋고 기뻐서 열심히 하다보면 장로도 되고 권사도 되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필요해서 차출한 사람이 있고, 기업에서 필요해서 스카우트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자격이상을 가진 자로 뽑힌 자들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부른 자입니다. 그러므로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합시다. 할렐루야!
진정한 용기는 신중한 결단이다
검증부재현상은 사고의 원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