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히 11:17~32)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와 선택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무수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순전히 자신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자유의지가 무엇에 이끌리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닥친 문제나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근거하여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판단하며 그 한계 내에서 선택하고 나아갑니다. 따라서 이미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하고 있으며, 답도 스스로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기적이나 불가능에 도전하는 믿음의 모험은 무모한 짓이거나 어리석고 겁 없는 불장난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에 갇혀 그 이상은 절대 생각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상의 지혜에 갇혀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만유의 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아버지를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생각하기에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늘 그러한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요, 아니면 남들의 간증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 큰소리쳐도 행동으로 그 믿음을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무수한 선택의 순간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내 속에 있는 두려움, 불가능과 싸우며 문제에 도전하는 거룩한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는 치열한 싸움이요, 생명력이 넘치는 도전입니다.
죽은 것은 권세가 없습니다. 아무리 한 때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왕이라 할지라도 죽어버린 왕은 권세가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동안이나 이 나라를 철권으로 다스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 땅에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명멸했던 무수한 영웅호걸들이 당시에는 무서운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호령했는지 모르지만, 죽어버린 그들은 이제 단지 역사 속 인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권세란 살아있는 자의 것입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금 현직 대통령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권세 있는 자입니다. 이라크 전쟁도 그의 권세로 진행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권세도 임기가 끝나면 사라집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권세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우리의 모든 삶을 그분께 의탁하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살아계시며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실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상대를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 곧 신뢰, 믿을 신(信), 힘 받을 뢰(賴), 믿으면 힘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늘로부터 새로운 힘을 그분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전지함과 전능함을 믿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깨닫습니다. ‘아, 그는 내 아들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바로 종들을 불러 ‘저분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지시합니다. 종들은 주인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주인의 말을 생명으로 압니다. 그 종들이 예수의 말에 순종하여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부었더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요한복음 2장). 바로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이 곧 능력입니다.
홍해를 갈랐던 모세나 그의 지팡이에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았던 여호수아나 그 때 불어댄 양각나팔에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한 그 행동이 능력을 창출해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순종하는 행동에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을 기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믿음장이라 일컫는 히브리서 11장, 오늘의 본문말씀을 장식하고 있는 무수한 믿음의 선친들의 이야기는 바로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이야기, 믿음으로 이삭이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를 축복한 이야기, 믿음으로 야곱이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한 이야기, 믿음으로 요셉이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한 이야기, 그리고 홍해를 갈랐던 모세,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 믿음으로 정탐군을 영접하였던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의 이야기, 그 외에 많은 믿음의 선친들을 나열하며 히브리서 기자는 가슴을 치며 더 나열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들 모두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좇은 자들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저 또한 믿음으로 지금까지 온 사람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며(롬1:17)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히11:6)는 말씀을 붙들고 물 위를 걷는 숱한 위기 앞에서 오직 믿음으로 행동하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따라서 제가 여러분에게 전해줄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쥐꼬리만한 문화적인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꿔야합니다. 일생일대 최고의 복을 받기 원합니까? 믿음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살아있는 자입니다. 살아있는 자는 움직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도전합니다. 믿음은 거룩한 모험입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행동합니다. 믿음의 선택을 하는 순간 분명 마귀는 훼방합니다. 사람을 들어 ‘불가능하다’고, ‘안된다’고, ‘큰일 난다’고 위협하고 어르고 달래며 어떻게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흔들리면 안 됩니다. 요동하는 바닷물결 같아서는 믿음의 역사를 맛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만이 믿음의 거룩한 모험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기도했으면 행동하십시오.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단지 사람들이 믿지 못할 뿐입니다. 저는 그분이 믿어주기에 세계를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려할 때, 여러분보다 더 몸살을 내시며 지켜보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세요.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지팡이를 내밀어! 일곱 바퀴 돌아!’하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이나 경험은 던져버리고 오직 그분의 말씀, 그분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면 기적이 따라옵니다. 무엇이든 예수 이름으로 도전하세요. 남들이 안 된다 해도 ‘내가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무엇이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꼼짝 못하시고 하늘 문을 여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2005년, 믿음으로 불가능에 도전하여 일생일대 최고의 복을 받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
믿음은 거룩한 모험이다 끝까지 포기만 말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