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복을 받는 비결 (창 4:1~8)
지난 주, 인천교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어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모처럼 맏아들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너무 좋으셨는지 제 얼굴을 부비시며 입도 맞춰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님이 좋긴 좋다. 네가 이렇게 변한 것을 보면…. 사람이 12번 변한다고 하지만 너는 아주 딴 사람이 되었어.”
“참 어머니도….”
이렇게 말하고 웃었지만, 제가 봐도 어머니 말씀대로 저는 진짜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때 제 동생 친구들이 제 얼굴을 보고는 ‘정말 사납게 생겼다’고 했을 정도로 눈꼬리는 올라가고 혈기가 넘쳐 보이는 얼굴이었습니다.
한 번은 젊은 경찰관이 제 아버지의 친구 분께 반말을 하며 욕설을 퍼붓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 그 경찰관을 마구 때렸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한동안 도망 다녀야 했고, 부모님께서는 그 분을 찾아가 빌기를 숱하게 하다가 결국 당시 집 한 채 값을 지불하고야 합의를 보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수 십 년 전 일입니다. 지금 제 얼굴은 누가 봐도 온유하게 생겼고, 저를 가까이 만나 본 사람들은 친정아버지 같이 편하다고 말들 하니, 정말 어머니 말씀대로 예수님이 좋은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혈기를 내는 것은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이며, 결실 때에 우박이 쏟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5).
최초의 살인도 바로 이 혈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담에게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열납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을 열납하셨습니다.
이에 가인이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얼굴을 보시고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뇨?”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분노로 인하여 죄가 잉태되리라는 것을 이미 간파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께서 ‘죄를 다스리라’고 하시는 충고를 무시하고 들에 있는 아벨을 쳐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분노가 낳은 죄입니다. 만일 가인이 ‘왜 하나님께서 내 제물을 열납지 않으셨을까?’하고 자신을 돌이켜 살폈더라면 그는 살인자는 물론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혈기를 내면 이성이 마비되고, 분별력이나 판단력을 잃게 되어 흡사 짐승처럼 됩니다. 그러니 혈기를 내는 것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모세가 장성한 후에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고역(苦役)함을 보고 괴로워하던 중,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을 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그를 쳐 죽여 모래에 감추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 일이 발단이 되어 모세는 왕자의 자리를 떠나 광야의 세월을 살게 됩니다. 또 모세의 혈기는 민수기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이 없어 원성을 높이자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물은 솟게 하셨지만 그것은 분명 불신앙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원성에 대한 분노요 혈기였기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입성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곳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족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겔21:4,5).
그래도 혈기를 내겠습니까? 저는 혈기 때문에 한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말에 분노하여 순간 망치를 들고 아내의 머리를 내리쳐서 아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남편은 구속된 사건이 몇 년 전에 실제 있었습니다. 혈기를 억제하지 못하여 가정이 풍비박산 난 것입니다. 두고두고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남편이 혈기를 다스렸더라면, 아내가 남편이 혈기 냈을 때 잠시 입을 다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파도가 세게 칠 때 바위는 같이 맞받아치니 파도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래는 파도가 몰려올 때 그 성난 파도를 감싸버리니 파도가 거품을 내며 사그라지는 것입니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집에만 들어오면 화를 내는 아버지가 있다면 어느 자식이 집에 들어가려고 하겠습니다. 그런 남편이 아내는 달갑겠습니까? 집안에 육선(肉饍)이 가득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결혼을 할 때 돈 좀 있다고 혹 해서는 안됩니다.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오래 사귀어 본 뒤 결정해야 후회가 없습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일생을 꿈꾸어야 합니다. 오 리를 가자면 십 리를 가주고,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 대주는 여유롭고 부드러운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 자는 필경 진짜 하나님의 사람일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래처의 사주가 뻑 하면 성질이나 부리고 버럭 화나 낸다면 어찌 그 사람과 거래가 계속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동업자가 혈기방자한 자라면 더더욱 그와는 멍에를 같이 맬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의 제나라 왕은 기성자에게 싸움닭을 기르게 했는데 열흘이 지난 뒤 임금은 수시로 닭을 조련하고 있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제는 되었느냐?”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저 닭은 상대 닭이 달려들려고 하면 안절부절 못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난 뒤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지금은 상대 닭이 달려들 기세가 보이면 분을 참지 못하여 닭털을 세우고 난리를 칩니다.” 다시 한 달이 흐른 뒤에야 기성자는 임금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저 닭은 상대가 아무리 위협을 해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닭과 같이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목계(木鷄) 같은 자와 대업을 꿈꾸어야 합니다. 기타 줄처럼 파르르 하는 소인배와는 동업도 대업도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잠22:24,25).
교회에서 목사가 버럭버럭 화나 내보십시오. 아니 세상에서도 힘든데 미쳤다고 교회까지 와서 목사가 내는 혈기를 보고 있겠냐 이 말입니다. 널린 게 교회인데 말입니다. 전도사가 참지 못하고 혈기내면 교구는 다 깨지고 맙니다. 또 구역장이 쌩쌩 찬 바람만 내면 아무도 구역에 안 나옵니다. 햇볕하고 바람하고 나그네 옷을 누가 벗겼습니까? 햇볕입니다. 사도의 표는 오래 참음이고, 성령의 열매도 오래 참음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분재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원예사로부터 나무도 암(癌)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무에 무슨 암이 있느냐?’고 제가 물었더니 그 분 하는 말이 “아카시아나 찔레처럼 가시가 있는 나무가 암에 잘 걸립니다.” 라는 것입니다. 가시가 남을 찌르는 줄로 알았는데 실상은 자신을 죽이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혈기는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멸로 내어 모는 것입니다. 남편과 싸워 화가 잔뜩 난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물렸더니 아이가 바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해보셨을 겁니다. 혈기를 내는 것은 속에 독을 품는 것입니다.
성공의 길과 멸망의 길은 분명 따로 있습니다. 멸망을 자초하려거든 아무 때나 어디서든 혈기를 내십시오. 그러나 성공을 하려거든 자신을 다스리십시오. 그래야 가정이 화목하고, 기업이 승승장구하며,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가 무궁 발전할 것입니다. 일생일대 최고의 축복의 해를 맞고 싶으십니까? 혈기를 내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혈기 내는 자를 멀리하라 닮은 꼴은 시간과 정비례한다
열 번의 채찍보다 한 번의 칭찬이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