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정이 부활해야 한다 (막 16:1 ~ 20)
복음이란 福(복 복), 音(소리 음)입니다. 즉 복음이란 기쁘고 반가운 소식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은 부자가 되는 길이고, 질병으로 아픈 자에게 복음은 건강하게 나을 수 있다는 것이며, 얽매인 자에게는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죄악에 빠졌던 우리의 죽음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영·혼·육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 부활의 소식이 곧 복음입니다. 고로 복음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세계 구석구석, 심령 심령마다에게 이 복음, 부활의 소식을 전파하라는 것이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저는 이 부활절에 우리 모두의 가정이 부활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이 부활해야 교회가 부활하고, 기업이 부활하며, 나라가 부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모든 것의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입니다. 자신을 다스리면 가정이 바로 서게 되어 있습니다.
요사이 인천교회 신축공사 관계로 인천에 머물고 있으면서 많은 성도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처럼 성도들을 직접 대면하고 상담하다 보니 가장 시급한 것이 가정의 부활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한 집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집에 들어가면 머리에 지진이 납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그 집사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왜 지진이 나?”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허구한 날 아내가 없습니다. 구역예배 드리러 갔거나 기도처에 기도하러 갔거나 심방 가고 없는 겁니다. 그러니 혼자 밥 차려 먹으려다 보면 머리에서 지진이 날 밖에요. 주님 일 한다고 다니니 나무랄 수도 없고….”
솔직히 저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주의 종들이 지식이 없구나.’ 물론 주의 일이 무엇보다 우선 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아내는 집에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에는 집에서 아이들을 맞게끔 목사나 전도사들이 배려하고 시간 분배를 해야 합니다. 퇴근 했는데 아내가 집에 없다면 누가 텅빈 집에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길을 찾게 되고, 아이들도 엄마가 집에 없으니 밖으로 돌다 나쁜 길에 빠지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미명하에 가정을 팽개치게 하고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면 이는 오히려 마귀가 기뻐할 일 아닙니까?
철산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는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집사가 상담을 왔습니다.
“제 남편이 제가 새벽기도에 나가는 것을 너무 싫어합니다. 같이 있자고 난리예요. 어쩜 좋지요?”
그래서 저는
“그럼, 집사님. 당분간 나오지 말고 남편이 하자는 대로 응해주십시오. 먼저 부부가 화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제가 핍박을 받더라도 나오라고 할 줄 알다가 나오지 말라고 하니까 좀 의아하게 생각했던지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그러나 제 말에 순종한 집사님은 그후로 한동안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름 가량이나 지났을까 했을 때 그 집사님이 다시 새벽기도에 나왔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반가워서 물었더니
“오늘 새벽 자는데 누가 저를 깨우는 거예요. 그래서 눈을 떠봤더니 남편이 저를 툭툭 치며 ‘새벽기도 안 가?’ 그러잖아요. 그래서 ‘할렐루야’ 하고 나왔지요. 목사님 방법이 옳았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가정을 만드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마귀는 가장 먼저 가정을 깨뜨렸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리고, 나라의 기강까지도 흔들리게 됩니다. 요사이 수없는 가정이 깨져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가정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마다 제 가슴이 미어지듯 아픕니다. 저는 가정이 깨지는 쓰디쓴 맛을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아픔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그래서 제 성도들만은 저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그것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집은 돈만 있으면 아름답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세우는 것은 돈만으로 안됩니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이 제일의 요건입니다. 서로의 사랑을 먹고 자라야 그 가정이 화목하게, 견실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자 노력할 때, 자녀의 심령이 부활하고, 사랑이 부활하여 가정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달팽이도 집을 지고 다닙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전선에 나간 장교인지라 가정을 뒤로 할 수밖에 없지만 평신도들은 역할이 다릅니다.
그러니 남편들도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가 가정을 소리 없이 지키며 애쓰는 아내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아내는 밖에서 수고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등이라도 두드려주며 마음의 휴식을 제공해 주기 바랍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와 대화하세요. 부모들이여, 자녀와 대화하세요. 세상친구들에게 인심 써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없습니다. 대화의 단절은 오해를 낳고,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되는 법입니다. 대화하면 담이 허물어집니다.
예수께서 죽음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주와 직원이 대화하면 서로의 담이 무너져 기업이 부활되고, 목자와 성도가 대화하면 교회가 다시 살게 됩니다.
번데기가 기한이 차면 나방이 되고, 구더기가 파리가 되고, 굼벵이가 매미가 되는 것을 아십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한이 차면 육체를 벗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존체입니다. 죽음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때 영생(永生)이냐, 영멸(永滅)이냐는 지금 육체를 입고 있을 때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뜻대로 행한 자는 지금 예수님이 짓고 계신 신천지(新天地)에서 살게 되나, 만일 그렇지 않으면 구더기도 죽지 않는 불 가운데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없다면 우리는 더욱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전15:14~19)’.
석가모니의 사리가 발견되었다고 그 사리를 찾아가 절하고 복을 비는 장면들이 TV방송에 나오곤 했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뼈에서 나온 사리에 무슨 영험한 능력이 있다고 사람들이 난리인지 안타까운 마음뿐이지만, 생각을 바꿔 만일 예수님의 뼈가 하나라도 발견되었다면 기독교는 그 날로 끝장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셨으나 그분은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사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고, 죄인으로 낙인찍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사면복권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의 부활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길입니다.
할렐루야.
복음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전파하는 것이다
가정은 최초의 교육기관이며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