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 (계 3:14~22)
제가 늘 주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가장(家長)의 책임이고, 기업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주의 책임이다. 문제의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선생이 있는 것이며, 성도가 문제가 아니라 목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고, 국민이 문제가 아니라 통치권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능한 지도자 밑에서 인물이 날 수 없고, 무력한 지휘관 아래서 대인(大人)이 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어느 단체든 지도자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한계가 곧 그 단체와 단체원들의 한계이므로 지도자가 무능하면 그 단체도 무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체원들이 물이라면, 지도자는 배입니다. 물이 출렁이면 배는 뒤집히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 단체가 출렁거립니까? 지도자가 지도자 구실을 못할 때 그렇습니다. 고로 무능한 지휘관은 지휘봉을 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지도자가 유능한 지도자일까요? 유능한 지도자의 자질은 먼저 목적의식이 확실해야 합니다. 목적이 없는 배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그 배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좌초되고 맙니다.
만일 지도자에게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면, 또 달려갈 방향설정, 즉 목표가 없다면 그 단체는 사분오열(四分五裂) 될 것입니다. 모세가 출애굽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히 목적지를 주셨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라.’ 그래서 모세는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불평과 불만 때문에 40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방황했으나 모세에게는 부여받은 목적과 목표가 분명했기에 마지막까지 그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원성에 좌절했을 것이고, 난관 앞에서 포기했을 것입니다. 지도자의 자질 중의 으뜸은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분명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자기 의사표현이 확실하고, 색깔이 분명해야 합니다. 차든지 덥든지 분명해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 어느 집사와 일을 보고 돌아오던 중에 제가 “어디다 내려줄까?” 하고 물었더니 집사는 “아무데나 내려주세요.”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흐리멍덩한 대답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상에 차를 세우고 그에게 내리라고 했습니다.
당황한 집사가 “여기 내리라고요?” 하며 당황하기에 “아무데나 내려달라면서.” 하고 와버렸습니다. 나중에 그가 찾아왔기에 저는 “사람이 분명해야지. 의사표현이 확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걸세.” 그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술에 물 탄 듯한 표현과 행동으로는 절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서양인들은 ‘Yes(예), No(아니오)’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는 “식사 하실래요?” 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라고 해도 몇 번을 더 권하는 것이 예의인데, 서양에서는 단 한 번의 의사타진으로 끝을 냅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는 가치판단은 뒤로 하고라도, 적어도 지도자는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는 신앙에 있어서 차든지 덥든지 분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지근한 자는 토하여 버린다고 했습니다. 무골호인(無骨好人)이란 말은 욕입니다. 뼈가 없이 흐물흐물하다는 말인데, 그래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셋째, 실전경험이 많아야 한다. 경험 이상의 지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늙은 낙타를 타고, 전쟁에 이기려면 백전노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도, 사업도, 목회도, 가정도 철학이 아닌 실전(實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최고의 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강의를 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주제는 ‘결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강의는 예상대로 명강의였습니다. 그는 결혼에 대해 정말 명확한 관점에서 예리하게 파헤쳤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시간이 되었는데 한 중년 아주머니가 일어나 물었습니다. “그런데 강사님은 결혼하셨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직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강의장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아니, 결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결혼을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단지 결혼문제뿐이 아닙니다. 세상사 모든 일에 경험은 곧 스승인 것입니다.
만일 지도자가 경험이 적은 자라면 경험자의 말을 경청하는 자라야 합니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중세(重稅)와 강제노동에 대한 10지파의 불만에 대해 노(老)정객들의 간언(諫言)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는 더욱 강하게 치리하는 바람에 나라가 분열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왕상12참조). 지도자는 귀가 열린 자여야 하고, 눈이 열린 자여야 하며, 마음이 열린 자여야 합니다. 그래야 선견(先見)자, 선각(先覺)자, 선지(先知)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먼저 보고 먼저 깨닫고 먼저 아는 자가 지도자인 것입니다.
넷째, 강하고 담대한 자여야 합니다. 다윗이 그의 왕위를 계승하는 솔로몬에게 ‘대장부가 되라’고 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입니다. 왕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당부한 것입니다. 언젠가 인천에서 아침 설교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조직폭력배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식사하는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를 말리는 장로님을 때리며 안경을 발로 밟아 깨뜨리는 등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파괴하는 무리를 보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화병을 들어 그들 쪽 벽을 향해 던졌습니다. “야, 내가 너 같은 것들이 무서우면 목사 안 해.” 하고 식탁 위로 걸어 그들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제 행동에 크게 놀라 “그동안 많은 목사들을 협박해봤는데 당신 같은 목사는 처음입니다.”하고는 바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그들 앞에 떨었더라면 그들은 교화되지 않았을 뿐더러 교회도 쑥대밭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도자는 위기 앞에, 문제 앞에 담대하게 나설 용기가 있는 자여야 합니다.
다섯째, 지도자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앉힐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은 사람이 합니다. 고로 사람을 제자리에 앉힐 수 있는 판단력이야말로 성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떠 있어야 합니다. 이는 마음을 비울 때 열리는 눈입니다. 혈연, 지연, 학연의 끈을 끊고 실력위주, 능력위주로 사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지금껏 순풍에 돛단 듯 잘 가는 이유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앉힌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다 자기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즉 달란트입니다. 그 달란트대로 사람을 쓴다면 톱니바퀴가 잘 맞아 돌아가는 것처럼 단체가 잘 갈 것입니다.
여섯째, 시작했으면 끝은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같은 자, 작심삼일(作心三日)을 일삼는 자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합니다. 끝을 보는 사람은 곧 결과를 보는 사람을 뜻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비가 올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이 열려 비가 내렸습니다.
가정의 가장(家長), 회사의 사주(社主), 교회의 목사, 그리고 한 나라의 통치자 모두 지도자입니다. 이 모든 지도자가 바로 서야 가정이 행복하게 되고, 회사가 번성하며,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가 안정되게 됩니다.
올해는 정신부터 고칩시다. 일생일대 최고의 복을 받으려면 먼저 자세부터 새롭게 해야 합니다. 사자가 이끄는 양의 부대가 양이 이끄는 사자부대보다 낫다는 말을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조직적인 정신력이 조직적인 군사력을 압도하는 법입니다. 위대한 결단이 위인을 낳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결단 하는 순간 당신 삶을 변화될 것이며, 최고의 복이 당신을 향하여 달려올 것입니다.
양이 이끄는 사자 부대보다 사자가 이끄는 양의 부대가 낫다
무능한 지휘관에게서 지휘봉을 뺏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