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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마 16:13~20)

252호 · 2004-12-24

우리는 이번 주일에 인천 성전 신축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대지 3천여 평에 본당 건물과 교육관, 신학교 등을 포함하여 연면적 4천여 평의 대규모 공사가 지금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정말 대역사의 장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있습니다. 교회 건물을 아름답고 크게 짓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마지막 시대에 어떤 교회로 남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외향보다 내면이 더 아름답고 충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듯 교회도 모양이나 규모로 취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예루살렘 교단, 예수중심교회는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증거되어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세계에 복음을 전해 왔고, 지금도 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제게 “무슨 전쟁구호 같습니다. 교회 슬로건 치곤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악한 것들과 한판 전쟁 중인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도 교회에 나가는 것을 무슨 문화행사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모나게 살게 뭐 있느냐? 하나님도 더불어 살라고 했는데 둥글둥글 사는 게 안 믿는 사람 보기에도 좋지 않으냐?’고 나름대로 신앙노선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신앙만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가 감당치 못하는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그것은 세상 일과 타협하지 않는 교회를 말합니다. 타협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력이나 권력, 지력 앞에 당당해야 하는 것이며, 때론 사랑하는 부모나 아내, 남편과 자식을 등져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신앙 자세를 순교자적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다니엘의 믿음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금령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곧은 신앙이며, 신앙의 절개가 다니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동일합니다. 그들도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진다는 위협이 왔지만 그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 신앙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타협 없는 신앙 앞에 하나님은 감동하사 친히 사자굴에 찾아가 사자의 입을 막았고, 풀무불 속에 뛰어 들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를 믿는다고 옥에 가두거나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순교자적 신앙, 타협하지 않는 신앙은 있습니다. 핍박과 모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는 것, 인격에 손상을 받아도 믿음의 절개를 지키는 것, 그것이 순교자적 신앙입니다.

상량식에 참석하여 돼지머리에 절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믿음은 가히 타협 없는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일에 엄청난 계약체결을 미루고 예배에 먼저 참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그 정도 일에 그렇게 거창한 수식어를 쓰냐고 반문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상사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계약하지 않으면 당장 엄청난 손해가 오는데 당신도 그럴 수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사의 눈총 때문에 돼지머리에 절을 합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주일쯤은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눈총은 당장 따갑지 않으니까요.

주님은 내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많은 교회와 성도를 두고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믿음, 양다리 걸친 신앙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속화된 교회가 많다는 뜻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저는 이번 인천 성전 신축 예배에 어머니를 초청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제게 서운한 것이 아주 많은 분이셨습니다. 젊어 고생하며 모아둔 돈을 모두 제가 주를 위해 썼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제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괘씸하고 화가 나셨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정말 오랜 세월 어머니를 뵐 수 없었습니다. 쫓겨났었거든요. 어디 그 뿐입니까? 어머니 환갑에 부흥회에 갔었습니다. 장남이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어머니를 기쁘게 하랴 하는 기로에서 하나님을 택했습니다. 지금 제 어머니는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어머니 편에 섰더라면 그때 당장은 어머니를 기쁘게 했을지 몰라도 오늘의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신만 쫓지 않으면 명예를 회복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달콤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의 역사를 두고 거래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만 받는다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버가모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그 중 서머나 교회와 빌리델비아 교회만이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나머지 교회는 첫사랑을 버렸거나 세상의 부에 치우쳐 변질되고 타협했기 때문에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환난이 많았지만 참고 이겨 주님으로부터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격려를 받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함으로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1,12).’

저는 우리 교회가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의 칭찬을 듣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악한 것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악한 것들이 ‘저 예수중심 교인은 건드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반석들이야.’ 하고 손사래를 쳐야 합니다. 바위에 성냥불을 아무리 던져봐야 타지 않는 것처럼, 바위같이 흔들림이 없는 믿음은 음부의 권세가 감당치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타협이 없는 교회, 곧은 믿음을 소유한 교회나 개인은 하나님의 신뢰를 얻어 천국 열쇠를 받게 됩니다. 천국 문을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천국 열쇠 말입니다. 천국 열쇠만 쥔다면 세상에 무엇이 부족하겠으며, 무엇이 걸림돌이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날을 바라보며 앞만 보며 갑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교회’,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교회’, ‘하나님께 신뢰받고 사람에게 신뢰받는 교회’는 세계 제일 가는 교회가 될 것이며 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 가나 머리가 되고, 많은 사람의 리더가 될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세상 일은 타협 있어도 신앙만은 타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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