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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호 목차 › 붕우칼럼

기쁘다 구주 오셨네

251호 · 2004-12-15

2000년 전, 베들레헴 작은 마구간 구유에 한 아기가 누이셨다. 고대광실(高大廣室)에 누이셔도 부족할 터인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은 말의 먹이통에 그 귀한 몸을 누이셨다. 왜 그러셨을까? 이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시려고, 구원자가 되시려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가난과 질고를 짊어지시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정말 죄에서 놓임을 받았고, 가난을 벗어났으며, 병에서 해방되었는가? 결코 아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미덕인 줄 안다. 심지어는 부자에 대한 적개심까지 가지고 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하게 되심은 가난을 같이 즐기자는 뜻이 아니다. ‘가난의 짐을 내게 던져버리고 너는 부유하게 살라’는 의미다. ‘부유와 건강으로 남을 돕고, 주의 일을 하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가 고아원 짓고, 학교 짓고 병원 지으며 구제하는 것 보았는가? 진정한 부자들이 한 일 아닌가? 우리는 그런 부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들을 따라가려 노력함이 마땅하다.

성탄절에 즈음하여 축제에 취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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