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249호 목차 ›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남원북철(南轅北轍)

249호 · 2004-11-30

전국시대 위(衛)나라가 조나라를 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를 때, 위나라 대신인 계량(季粱)은 외지에서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도성으로 달려왔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전쟁은 분명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왕을 배알하고 말했다.

“전하, 이 전쟁을 결행하시기 전에 신의 한 마디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신이 이번에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마차를 타고 북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남쪽 초나라로 가는 길이오.’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지금 당신은 북으로 가고 있으면서 무슨 말이오?’

그러자 그는 ‘그게 무슨 대수요? 내 말이 준마라 잘 달리고, 마부는 그 말을 잘 몰고, 나는 노잣돈도 많으니 무슨 걱정이오?’ 그러는 겁니다. 전하,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그래 가지고 과연 초나라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왕은 계량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했다. 계량을 다시 말을 이었다. “전하, 지금 상황에서 조나라를 치려는 것은 아까 그 나그네가 북으로 가면서 남쪽 초나라로 간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서두르시는 것은 패자(覇者)의 길에서 멀어지는 처사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전쟁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남원북철(南轅北轍)이란 수레의 끌채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바퀴는 북쪽으로 굴러간다는 의미로,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늘 우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믿노라고 시인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실제 말과 일치하고 있는가? 사탕발림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해놓고는 세상에 나가서는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그곳에 주저앉는다. 또 예수는 어디 두고 세상의 지력가, 재력가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예수는 “나를 주인이라고 하면서 언제 주인으로 대접했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그런 자는 부산에 간다고 해놓고 목포행 기차를 탄 것과 같아 절대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그 나라에 당도하리라는 꿈조차 꾸지 말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마음 따로, 몸 따로’, 그것은 영적 간음이니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겨라.

249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나눔의 지혜
당신도 건강할 수 있다.
CORNER 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