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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왜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셨을까? (시 23:1 ~6)

248호 · 2004-11-24

미국의 유명한 무디 목사가 시카고 화재로 인하여 교회에 불이 났을 때 그는 감사했습니다. 사람들은 무디가 충격에 돌았나보다 하며 혀를 찼습니다. 그러나 무디는 “교회를 신축하려면 헌 건물을 허물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돈 들이지 않고 허물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며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보험사와 각계의 성금을 차고 넘치게 보내 주사 크고 멋진 교회를 짓게 하셨습니다. 고난 중에 감사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우연이라고 우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들어보십시오. 몇 달 전, 우리 목포예수중심교회가 한 광란자의 소동으로 전소(全燒)되었습니다. 저는 목포교회 담임 목사에게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목포교회 담임 목사는 제 반응에 꽤나 놀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쁘게 하신 것을 보았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두고 봐라.”고 했습니다. 딱 두 달 만에 우리는 더 좋고 반듯한 교회를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원래 목포교회는 대지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번에 완전히 해결하여 더 넓은 땅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하는 것이 참 신앙이요,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찬송시입니다. 그의 찬송시를 보면 감사가 철철 넘칩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의 상황이나 환경이 정말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올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었고, 원수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다윗이 기특했을 것입니다. 애매한 고난으로 불평을 해도 들어줘야 할 판인데 감사를 하니 얼마나 예쁘고 대견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이 노래한 대로 원수의 목전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고, 잔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다윗을 안전하게 지키셨으며, 사울의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 넘기셨으며, 그를 향하여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칭하셨고, 다윗의 계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던 것입니다.

20년 전, 저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축복과 고난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부족한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동시에 가족과 친구 그리고 교계에서 버림을 받는 고난의 쓴 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원망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집에서 쫓겨나 차 속에서 지낼 때도, 종교재판에서 제명이 되었을 때도, 각 언론이 저를 씹고 펜으로 저를 죽였을 때도 한 번도 주의 종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을 보며 저를 통하여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오 놀라운 사랑, 오 놀라운 사랑, 예수 사랑, 감사의 눈물로 주님을 찬양해’ 라고 찬송시를 지어 불렀습니다. 정말 그것은 그 때의 저의 거짓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그 감사의 결실은 너무나 커 저도 놀라고, 저를 낳아준 어머니도 놀란 지경입니다. 세계 70여 개국이 예루살렘 지교회가 되었고, 전세계 목회자들이 예수중심교회 제자가 된 것입니다.

배추씨를 뿌리면 배추가 나는 것이 당연하듯, 도토리를 심으면 참나무가 자라는 것이 당연하듯, 감사의 씨를 뿌리면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것도 당연합니다. 또한 사과 속이 사과씨는 셀 수 있지만 사과씨 속의 사과는 셀 수 없듯이, 현재의 감사거리는 셀 수 있지만 당신이 입술로 뿌린 감사씨 속이 무한한 감사할 거리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심으면 물질의 축복과 사업의 축복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만일 고생하고 있는 부모님께 매일 ‘남들 부모가 다 해주는 것도 못해주면서 무슨 부모야?’ 하는 자식과 ‘저희를 위해 이렇게 새벽부터 일하시느라 힘드시죠?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는 자식 중에 누가 더 예쁘겠습니까? 나중 뭐하나 라고 생기면 누굴 주고 싶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인이었던 우리가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면복권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권리를 예수가 회복시키셨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하며, 예수가 명령하신 것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힘들고, 조금 어려우면 어디 그렇습니까? 마치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식으로 심통을 부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힘들다고 욥만큼 하겠습니까? 욥은 자식이 다 죽고, 재산이 날아가고, 아내가 저주하며 떠나고, 몸에 악창이 났어도 입술을 지켜 원망과 불평을 삼갔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은 이전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욥기서를 읽어보십시오. 감사하는 것은 보이지 않으나 썩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소독제와 같고, 암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항암제와 같으며, 일을 단기일내에 이루는 성장촉진제와 같아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합니다.

우리 교회 집사 중에 아내가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나서 도망갔습니다. 그 때 그 집사가 울면서 찾아 왔길래 저는 ‘감사하세요.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라고 위로했습니다. 제가 달리 뭐라 하겠습니까? 그 집사는 ‘어떻게 이 상황에 감사가 나옵니까?’ 하며 울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억지 같지만 억지로라도 감사의 씨를 뿌리면 열매가 맺히는 법이거든요.

그는 ‘목사님 말씀대로 하겠다’고 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그를 보지 못했는데 어느 날 교회에 그 집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아리따운 아내와 함께 말입니다. 그는 “목사님 말대로 감사를 하며 지냈습니다. 억지로 말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심성 좋고 아름다운 아내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저는 기뻐서 ‘감이나 사와’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정말 기뻤거든요.

다른 간증 하나 더 할까요? 한 집사가 구조조정으로 명퇴를 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볼 면목이 없는 것은 물론 자신의 능력 부족이 현실화된 것 같아 낙망하고 있던 중 저를 찾아왔습니다. “왜 낙담하고 있나? 당신은 과장으로 끝날 사람이 아냐. 내가 보기에는 사장감이라고. 이참에 하나님이 당신을 사장 만드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 감사할 일이지. 감사하게.” 그는 마음의 위로는 물론 용기를 얻고 돌아갔습니다. 몇 해가 안 되어 그는 정말 중소기업 사장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떨어져야 나뭇가지가 보이듯, 참 신앙이란 바람이 불어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했듯이, 이삭이 우물을 빼앗겨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했듯이, 야곱이 그의 외삼촌의 거짓약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았듯이 우리도 늘 감사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아무리 생수라도 건물의 파이프라인이 녹슬었으면 물에 녹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환경을 주면 원망과 불평이 그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무엇을 주든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광야를 지날 때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만나를 한없이 주었더니 나중에는 왜 맨날 만나만 주냐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 광야에서 죽었지 않습니까? 당신 안에 녹슨 파이프라인, 원망과 불평의 파이프라인을 갈아야 합니다. 원망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이며, 불평은 추수 때에 우박이 내림과 같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알면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란 느낄 감(感), 사례 사(謝)입니다. 감사하며 삽시다. 감사는 모르면 개, 돼지 아니겠습니까?

원수는 흐르는 물에 새기에 은혜는 심비에 새겨야 한다

감사는 항암제요 방부제요 소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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