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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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248호 · 2004-11-24

신문을 들여다보니 글씨가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서 신문을 조금 떼니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나이가 든 탓 일게다. 나이가 들면 가까운 것보다는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여 거리를 두어야 모든 것에 초점이 맞는다.

젊었을 때, 혈기 왕성할 때는 그저 내 앞만 보기도 바빴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이제 조금씩 멀리 보는 법을 배웠다. 그만큼 눈앞의 욕심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움켜지려는 손아귀의 힘이 풀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제 다른 사람의 형편이 눈에 보인다.

또 하나, 이제 남의 허물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나도 모르게 상대를 재고 판단했는데 이제 눈이 흐려져 남의 티는 물론 들보까지도 흐리다. 모난 돌이 흐르는 물에 둥글어지듯, 각진 마음이 세월에 깎여져 나갔나 보다. 이런 것을 보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그렇게 억울하고 슬픈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제야 완성, 완숙되어가는 것 아닐까 싶다. 마치 젊은 시절이 화장하고 성장을 한 모습까지라면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나이는 성장한 모습에 챙이 큰 폼 나는 모자를 쓴 더욱 완성된 모습, 잘 차려진 모습이라 할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옷에 맞는 구두까지 골라 신어 화려한 외출을 하게 될 것이니….

계절이 익어 단풍이 아름답고, 장맛이 세월의 깊이에 있듯, 인생도 무르익어 갈수록 맛이 깊어지는 것 같다. 눈이 조금 흐리면 어쩌랴, 이마에 주름이 좀 잡히고 머리에 흰서리가 좀 내리면 어떠랴. 눈이 흐린 만큼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이 넓어지고, 이마에 주름만큼 경륜이 쌓이고, 흰머리만큼 추억이 간직되니 나이 들어가는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일이다.

일몰 전의 황혼이 일출의 광경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인생의 황혼은 붉게 타는 노을처럼 아름답다. 청춘을 꽃이라고 하고 노년은 굵은 고목이라 한다면, 꽃은 잠깐 동안의 시선을 모을 뿐이나 고목은 그 나무 그늘 아래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니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세월이 가는 것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저 세월을 노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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