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예술이다 (마 12:33 ~37)
미국의 복음 설교자로 유명한 빌리 그래함은 어린 시절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교회에서 온갖 말썽을 부려 어른들에게 수없는 꾸지람을 들었으나 여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의 할머니 한 분이 소년 빌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성격이 쾌활하고 말을 잘하니 나중에 부흥사가 되면 좋겠구나.” 어린 빌리는 할머니의 그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후로 빌리는 변했고, 장성하여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정말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칭찬 한마디가 소년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한 학생이 미술 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크레파스 가져가는 것을 잊은 것이 아니라 가정형편상 준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야? 다음에는 훔쳐서라도 가져와.”하며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그로부터 17년 후, 그 소년은 지존파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무고한 자를 수없이 죽인 살인범으로 말입니다.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말의 위력입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권세가 바로 한 치 혀에 달려 있습니다.
혀는 항공모함의 키(key)와 같은 것입니다. 그 엄청난 배가 아주 작은 키 하나로 움직이듯, 한 치의 혀가 내 운명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의 운명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조심하고, 잘 놀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먼저 남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폭언을 자주 해서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아내는 폭언을 할 때마다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는데 나중 나무판자에 못이 가득 박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못이 잔뜩 박힌 나무판자를 보고 아내에게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당신이 나에게 폭언한 수(數)예요.” 했습니다. 남편은 놀라 아내에게 잘못을 구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그후로 남편은 변하여 아내에게 좋은 말, 칭찬만을 했습니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뺐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못을 다 빼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기뻐서 남편에게 “당신이 내게 이렇게 좋은 말을 많이 했어요. 못이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기쁜 기색이 없이 “그래도 못자국은 남아있지 않소. 미안하오.” 했습니다.
상대에게 폭언을 일삼고, 모함을 하는 것은 곧 상대를 죽이는 것입니다. 꼭 총칼로 죽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닙니다. 펜으로, 혹은 말로 죽이는 것이 더 오래 아프고 잔인한 것입니다. 나중 회개하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해도 못자국이 남는 것처럼, 상처는 남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혹 자식에게 “빌어먹을 놈” 이런 욕을 하지는 않습니까? 정말 당신 자식이 빌어먹는 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말을 바꾸십시오. 아내에게 살쪘다고 동물에 비교하지는 않습니까? 동물과 사는 당신도 동물입니다. “당신은 풍성한게 마음까지 풍성하다니까.” 이렇게 말을 바꾸어 보십시오. 아마 밥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합니다. 칭찬하는데 돈 드는 것 아닙니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 기를 팍팍 살려주십시오. 당신의 칭찬이 엄청난 파급효과를 거두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간 12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를 보고 돌아와 이렇게 보고 했습니다. 그중에 10명은 ‘우리가 탐지한 땅의 사람은 거민이라 우리는 마치 메뚜기 같았다.’라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대조적인 보고입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을 밟은 사람은 긍정적인 보고를 한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말이 씨입니다.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열매가 나는 것입니다. 배추씨에서 무를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말은 이처럼 보이지 않으나 엄청난 것입니다. 누에가 자기 입으로 뽑아낸 실로 자신을 얽어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말이란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계속 내뱉으면 부정적인 것들이, 난감한 것들이 나를 에워싸고 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하면 세금 냅니까? 왜 스스로 자원하여 굴레를 씁니까?
저는 항상 ‘우리교회는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뿌렸습니다.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느냐고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어찌 잠잠하였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항상 좋게, 긍정적으로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20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마치 다윗이 이리저리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뿌린 것과 같습니다.
다윗의 결국은 어떻습니까? 목동에 불과했던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하나님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자가 되었으며, 예수의 계보에 오르는 자가 되었지 않습니까? 말을 바꾸십시오. 지금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에서라도 힘들지만, 정말 안나오지만 긍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들은 대로 행하실 것이니 긍정적인 말이 곧 힘든 현실의 열쇠일 수 있습니다.
셋째, 때에 맞는 말을 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입니다. 때와 경우에 맞는 말이란 곧 신중한 말을 의미합니다. 가끔 아무 때나 끼어들어 참견하고 간섭하는 자들을 봅니다. 한 마디로 푼수과 말입니다. 제일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 무경우인 사람이요, 무대포인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해야 할 때가 있고, 들은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말의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자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했습니다. 말의 실수가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을 적게 하는 겁니다. 말이 많다보면 실수를 하게 되거든요. 입에 파수를 세우는 일, 그것이 집단속보다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옷감은 염색으로, 술은 냄새로, 꽃은 향기로 그리고 사람은 그 말투로 됨됨이를 알아본다고 합니다. 당신의 말투는 곧 당신의 마음이요, 생각입니다. 생각이라는 주머니에서 말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마음에서 선한 마음이 나는 것입니다. 절대 악한 마음에서 선이 나올 수 없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세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미술가가 붓을 들고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는 마음에 있습니다. 추상화를 그릴 것이냐, 아니면 정물화를 그릴 것이냐 마음대로 그림이 완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오선지를 앞에 두고 어떤 곡을 작곡할 것이냐 하는 것 역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당신의 생각이 말로 표현되어지는 것이며, 그 말이 당신의 인생은 명작으로 만들 수도, 아니면 졸작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왕 인생이 말로 창작되는 것이라면 좋은 말, 아름다운 말, 긍정적인 말 그리고 때에 맞는 말로 인생자체를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어 봅시다. 말은 예술입니다. 예술성이 높고, 가치가 있는 삶을 위해 말을 잘합시다. 입을 열기 전에 한번쯤 생각하고 말을 합시다. 할렐루야.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을 수 있다
말의 실수가 없으려면 입에 재갈을 물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