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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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당당하고 분명한 자가 되라 (계 3:14~22)

231호 · 2004-07-27

남자들에게는 하얀 와이셔츠가 하나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의 깃은 멀리서 봐도 눈이 부시게 멋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좀 오래 입다보면 하얗기만 하던 와이셔츠가 누렇게 변해 이것이 과연 하얀색이었는지 의심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대개는 그만 입고 버리게 되지요. 왜 누렇게 변색이 될까요? 그것은 공기 속 더러운 것이 옷에 배기도 하고, 세제의 찌기가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변색된 것은 결국 버리게 됩니다.

변색된 옷만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도 변하면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변절자 말입니다. 일제 말기 때 친일로 매국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한 치 앞도 모르고 친일파가 되어 민족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민족 모두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배신자의 최후는 늘 이렇듯 처참한 것이거든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변절자들의 공통 성향입니다. 그들은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지요. 저는 그런 변절자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외국집회 때 성령의 역사를 보고 체험한 목사들이 디모데가 바울을 아버지라고 불렀듯이 저를 영적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다가도 ‘이단이니’, ‘잘못되었으니’하면 언제 봤냐고 돌아섭니다.

하기야 제가 예수 이름으로 기름 부은 자들도 그런 자들이 있는데 달리 뭐라 말하겠습니까? 그들이 왜 변절되는 줄 압니까? 그것은 하얀 와이셔츠가 누렇게 되는 원인과 같습니다. 이론과 학설로 변절을 초래하고, 교단의 배경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컬러를 잃어버리고 점점 변색되어 가는 것입니다. 신본주의는 없어지고 인본주의가 되고, 성령은 사라지고 도덕과 문화만 남는 변절자의 모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자의 최후는 이렇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회계담당이었으니 예수의 오른팔이었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가 옷에 때가 끼어 변색이 된 것처럼 변질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보니 희망이 없어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팔아넘기는 변절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최후요? 배창자가 터져 죽었지요. 사울도 변절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명하여 택한 왕이었으나 나중에 안하무인이 되어 하나님을 오히려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자식과 함께 처참히 죽었습니다. 누렇게 변한 와이셔츠를 버리듯, 누렇게 변질된 자도 이렇듯 버림을 당하거든요.

우리 교단은 컬러가 확실합니다. 절대 변색되지 않는 원색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심한 눈총도 받고, 모함도 받고 하지요. 누군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튀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단이라고 하는 겁니다. 적당히 타협을 하세요.” 저는 분명히 말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타협할 수 있지만 신앙만은 타협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다 누런 와이셔츠를 입었으니 나도 입어야 편하다’는 생각에 타협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먼저 본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우리 예루살렘 교단의 컬러는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는 교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색깔이 튀기는 좀 튑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독특한 컬러지요. 그러나 저는 분명한 것이 좋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회색분자는 딱 질색입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물을 마셔보십시오. 속이 뒤집어져 토하고 싶어질 겁니다. 거기에는 균도 득실거립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다리 걸친 신앙이라든가, 술에 물 탄 듯한 신앙은 주님이 토해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신앙에는 균, 악한 귀신이 바글거리기 때문입니다.

왜 꼬리를 내립니까? 확실한 신앙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가 이론을 내밀면 왜 미꾸라지가 진흙에 숨듯 숨습니까? 다들 그러니까 우리도 그러자는 겁니까? 다들 친일하니까 우리도 그러자는 겁니까? 그러다 해방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러다 주님 오시면 어쩔 겁니까? ‘주님, 다들 그러던데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할 겁니까?

세상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변색되면 버림당합니다. 제가 우리 교단을 어떻게 세웠습니까? 사람 취급 못 받고, 만물의 찌꺼기 같은 취급을 받으며 눈물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변질되지 않기로 다짐을 하고 여러분을 더욱 강하게 훈련시키는 겁니다.

백 명이 ‘No’ 해도 내가 확신이 있으면 ‘Yes’ 할 수 있고, 천 명이 ‘이것이 옳다’ 해도 내가 경험이 있으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교만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하고 당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없는 교회, 성령을 모시지 않는 심령은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모습은 같으나 맛이 없는 것 말입니다. 퍽퍽하고 달지 않는 맹탕이거든요.

이번 몽골집회도 난항의 연속이었습니다. 태풍이 불어대고 소나기가 쏟아지는가 하면, 방해공작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꼬리 내리지 않았습니다. 경험이 있거든요. 큰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폭풍이 이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더 당당히 나갔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비는 멈출지어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도 비가 계속 내리길래 비를 맞으며 나갔습니다. ‘어디 감히 예수 이름 앞에….’ 하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비가 거짓말처럼 멈추었고, 집회장인 메인스타디움 하늘 위로 쌍무지개가 떴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박철규, 그는 한때 깡패 오야붕이었지요. 그가 말하기를 “비가 안 멈추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그러는 겁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데 무엇이 안되겠느냐?” 그랬더니 박철규가 “태어나 남자에게 반해 보기는 처음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남자가 남자에게 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아십니까?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박철규에게 “그래, 너와 내가 몽골 땅에 영적 대혁명을 일으켜보자.”고 했습니다. 남자가 남자에게 반해도 혁명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만물과 만인을 여러분에게 맡기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변색된 누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에게 반한 여자는 없을 겁니다. 눈이 부시도록 흰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한 눈에 들어오고 멋져 보입니다. 하나님도 누렇게 변질된 신앙을 가진 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실 겁니다. 처음 그 색깔 그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컬러 그대로를 간직한 자에게 반하실 것이며, 그 자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과 평강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약속합시다. 누가 뭐래도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신앙의 변절자가 되지 맙시다. 절개를 지켰던 논개처럼, 춘향이처럼 우리도 신앙의 절개를 지켜 그 날에 칭찬받고 면류관 받읍시다. 지금 나를 돌아봅시다. 내가 신앙의 변절을 기도(企圖)하고 있지는 않은지. 할렐루야!

신앙은 절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신앙은 영적전쟁이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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