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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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고전 2:1 ~16)

226호 · 2004-06-24

한 소경이 “코끼리는 통나무가 두 개 서 있는 것 같이 생겼어. 내가 만져봤거든.” 그 때 다른 소경이 비웃으며 말합니다. “아냐, 코끼리는 긴 호스모양이야.”

두 소경이 옥식각신 할 때 또 다른 소경이 말합니다. “너희 둘 다 틀렸어. 코끼리는 푹신한 방석모양이지. 확실해.” 그러나 이 세 소경 모두 틀렸습니다. 첫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것이고, 둘째 소경은 코를, 셋째 소경은 코끼리의 귀를 만져본 것이 고작입니다. 그들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코끼리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적 소경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매일 넘어지고, 얻어맞고, 사기 당하고 그러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넘어졌는지, 누가 때리는지, 누가 날 가지고 노는지도 모르고 그저 ‘팔자려니’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기만 하면 날 넘어뜨린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고, 날 때리는 놈을 쫓아가 잡을 수도 있고, 저 사람이 날 도울 사람인지, 해칠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소경, 이것은 육적인 소경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당신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개안수술 시키셨습니다. 우리의 망막에 빛이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뜨린 자가 누구며, 때려서 아프게 한 자가 누구며, 상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볼 수 있게 하셨으며, 또 진리가 무엇인지, 복의 근원이 어디인지, 그리고 영생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의 세계를 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영의 세계를 알면 육의 세계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육이 누리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영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21세기에 무슨 영의 세계를 논하느냐?’고 반문하는 과학형의 사람도 있을 겁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영이 있느냐?’고 하는 막무가내형의 사람도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 자처럼 어리석은 자가 없습니다. 물고기 눈에는 물이 안 보이는 법이고, 사람의 눈에 산소나 탄소가 안 보이나 그것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지구 도는 소리가 안 들린다고 지구가 안 돕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코끼리가 호스모양이니, 통나무처럼 생겼으니 하는 소경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영안이 열립니까? 어떻게 하면 영의 세계를 알 수 있습니까?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충만이란 가득 채워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가득하면 눈이 밝아져 영의 세계가 보이고, 들리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뜨린 것이 악한 마귀의 궤계임을 알게 되어 이를 성령의 검으로 칠 수 있고, 병의 원인이 귀신의 장난임을 알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고, 영분별의 은사로 다시는 남의 손에 놀아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어두워 잃어버렸던 것들,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모든 것들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이는 자가발전입니다. 한전에서 오는 전기는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가발전은 그런 염려가 없지요. 그러나 항상 스스로 모터를 가동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의 원동력은 기도입니다. 요즈음 핸드폰을 다 가지고 있지요? 최근에 나온 핸드폰은 인터넷은 물론 사진도 찍고, 녹음도 되고, 기기묘묘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핸드폰이라 할지라도 배터리가 다 닳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고물이지요.

그래서 다들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충전기에 꽂아놓고 충전을 하고, 바쁜 사람은 차에다 충전기를 놓고 수시로 충전하여 쓰곤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 이미 하나님과 교신할 수 없는 사람에 불과하게 됩니다. “옛날에 나도 성령 받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옛날에 나도 배터리를 충전했어.”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한 번 충전하여 평생 씁니까? 늘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만 원짜리 지폐는 만 원 이상의 값어치를 못합니다. 십만 원짜리 수표는 십만 원의 가치를 가지게 되듯이 하루 한 시간 기도하는 자와 일곱 시간 기도하는 자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집회 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오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난 가짜 목사요.” 누군가 이 말을 듣고 저에게 걱정스럽게 말을 하더군요. “그러다가 진짜 역사가 안 일어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세요?” 저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겁니다. 내가 이 집회를 위하여 일곱 시간 기도 했습니다. 즉 배터리가 꽉 차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 모두 기도입니다. 기도하여 성령으로 충만할 때, 구하면 얻게 될 것이요, 찾으면 찾게 될 것이며, 두드리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눈이 안 보이면 구할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게 될 것이고, 옆에 두어도 찾지 못할 것이며, 벽을 두드리면서 안 열린다고 한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것들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느 선생님이 보물찾기 하는데 못 찾게 숨깁니까? 다 보일만한 곳에 보물을 숨깁니다. 문은 열리게 만들어져 있고요. 눈만 크게 뜨면 다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조지 뮐러가 어떻게 많은 고아들을 먹이고 입혔습니까? 그는 “기도하는 내 방석에 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휴, 제가 뭐 주님께 한 게 있어야 달래지요?” 아니, 당신 자식이 당신에게 대단한 일을 해서 용돈 주고 학교 보내주고 옷 사서 입힙니까? 내 자식이니까, 내가 부모니까 아무 대가없이 주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냥 달라면 되는 겁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면 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달라고 하는 겁니다.

아버지하고 대화하는데 무슨 미사여구가 필요합니까? 아버지 앞에 무슨 점잔을 뺍니까? 부모 앞에 문자 쓰고 체면 차리는 것, 그거 문제 있는 자녀입니다. 하나님께 땡강 못 부리는 자가 영적으로 성숙한 자 같아 보이지만 잘 보면 영적 교만을 떠는 겁니다. 부르짖지 못하고 거룩하게 폼 잡고 기도하다가 나중 명상을 한다나요? 그러다 영적 소경 되는 겁니다. 부모도 몰라보는 자 말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마십시오.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는 없지만 빛이 없으면 어두움은 금방 찾아옵니다. 방에 스위치를 내리면 금방 어두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가운데서 물건을 찾아보세요. 걸어보세요. 안 보여 찾을 수 없고, 걸을 수 없을 겁니다. 영에 어두움이 드리우면 넘어져 다치고 도둑맞고 잃어버리고 가던 길도 안 보이게 됩니다.

핸드폰 충전하시려고요? 영적 충전도 잊지 마십시오. 지금 무릎을 꿇고 배터리를 채우세요. 당신과 당신의 가내와 기업, 그리고 교회와 국가에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아무리 좋은 핸드폰이라도 밧데리가 떨어지면 소용없다

나의 영적 밧데리가 충만해야 하나님과 무시로 통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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