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으로 승리하라
‘아, 창피하다.’ 뉴스 시간에 방영된 한 여성 취객의 난동을 보고 있노라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다음 날, 술이 깬 그 여성은 너무 다소곳해 보였다. ‘저 사람이 어제 그 사람 맞나?’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학식 높고 도덕성이 강한 지킬 박사. 그러나 밤이 되면 악의 결정체인 하이드로 변신하는 이중인격의 인간. 기발한 상상력과 환상적인 기법에 휩싸여 어릴 적 손에 땀을 쥐며 단번에 읽어버렸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결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나를 은밀한 곳에 가지고 있다. 양심선 밑에 잠재된 헐크의 모형 말이다. 그러다 어두움이 오면, 이익을 챙길 때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들은 양심선 너머에 있던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바로 지킬 박사의 모습을 벗고 하이드로 탈바꿈을 하고 만다. 마치 마력(魔力)에 끌린 듯, 점잖은 체면은 사라지고 난잡한 취객이 되고, 인격적인 품위는 어디 두고 막가파가 된다. 양심은 어디 전당포에 맡겨둔 걸까? 몰지각에 몰염치가 예사다.
양심선. 그 선이 모호하면 순간 하이드가 지킬 박사를 무너뜨린다. 누군가 하이드의 모습이 더 진솔하지 않느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지킬 박사가 오히려 위선의 탈을 쓴 거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내 안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선(善)과 악(惡).
둘 사이에서 우리는 자주 방황한다. 선과 악이 늘 내 안에서 싸운다. 이제 선으로 악을 이기고, 선으로 나를 평정하여 자유하고 싶다. 이제 역겹고 구토 나는 하이드의 모습을 벗고 싶다. 그러나 이것이 의지로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의 통탄이 내 가슴을 친다.
그러나 절망은 이르다. 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으면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죄를 이기고 승리하신 것처럼, 그 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선으로 넉넉히 승리할 수 있다. 하이드의 결국은 파멸이요, 악의 결과는 사망이다.
‘지킬 박사! 네 힘으로는 불가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이드를 추방하라. 지킬 박사, 너를 지켜 승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