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라가길 원하십니까? (마 16:13 ~28)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념간의 전쟁일까요? 종교적인 분쟁일까요? 물론 그것도 힘든 싸움입니다만, 가장 질기고 힘든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보이는 적과 싸움은 첨단의 무기나 병기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와의 싸움은 의지와 노력이라는 비형상, 비물질이 수반되기에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비로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집(我執)과 자아(自我)를 버리고, 나를 부인할 때 나를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는 곧 이 시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를 따라 가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길이며, 죄악에서 건짐을 받는 길입니다. 즉 영원한 승리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분을 따르려면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否認)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생활과 사고(思考)의 구심점이 바로 하나님위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이 생명나무는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이 하나님 중심이 될 때 우리 삶 속에 생명이 넘치게 되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고, 그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분도 자기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행하사 대명(大命)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기를 원하십니까? 제자는 스승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마땅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나를 버리고 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마치 패배요, 절망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그가 다시 사심으로 악한 것들에게 패배를 안겼던 것입니다. 우리가 나를 부인하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징계를 받은 자 같아 보이나 죽임을 당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음이며, 근심하는 자 같으나 진정한 기쁨을 얻음입니다. 부활이란 죽음 뒤에 오는 영광입니다. 죽음 없이 부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부활되려면 나를 먼저 죽여야 합니다. 육신을 쳐서 죽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로도 그리스도로 향하는 자신의 사랑을 끊을 수 없노라 당당히 고백하던 사도바울도 자신과의 싸움에 힘들어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3,24).
육신의 욕구와 내 중심을 따르려는 나와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는 또 다른 나와의 싸움은 일생동안 동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사망으로 하나님과의 원수가 되게 함으로 육의 생각을 버리고 영을 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장성 예루살렘 기도원에 저의 무덤을 일찌감치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세상의 소욕을 버리고, 나를 죽였다는 증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진정한 그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시화한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듯이, 세상의 것들과 하나님의 것이 동시에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세상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오직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人本主義)에서 신본주의(神本主義)가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세상을 버리고, 나를 부인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귀하고 값진 것이 분명 있다면 그것을 버리는 것에 망설일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값진 진주가 위해 그의 전 소유를 팔수도 있다는 마태복음 13장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생각했습니다. 그는 많은 세월을 예수와 더불어 있었으나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통하여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기를 원했고, 갈망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께서 죽으실 것과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하자 자기중심적이던 유다는 결국 예수를 은 삼십 냥에 팔아넘기고 만 것입니다.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알았더라면, 그가 누구이신 것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자기를 버리고 예수를 쫓아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을 겁니다.
혹 당신도 예수를 수단삼아 인간의 욕구나 충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를 통하여 물질의 축복이나 받고, 더러는 치유함이나 받고자 예수를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예수를 통하여 치료함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제가 집회 때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이적과 기사와 표적을 보이는 것은 살아계신 예수를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진정한 까닭은 그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라 함은 그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중보자가 되심과 구원자가 되심을 나타내심이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심은 예수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가 곧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베드로처럼 당당히 고백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그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이 비록 좁고 힘들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주님이 가신 길이라면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어미 소처럼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 확신에 찬 고백을 바탕으로 순교자의 길을 갔고, 바울도 겉사람을 이기고 승리했기에 사도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따라 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죽이십시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하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나는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살게 하십시오. 반드시 예수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과정은 결과를 말할 수 없다 결과만이 과정을 대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