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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情)
189호 · 2003-10-09
우리 민족은 얼굴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 오랜 유교적 습성이 빚은 결과일 것이다. 적극적인 감정표현은 그리 탐탁치 않은 것으로 여겨지곤 했기에 감정을 삭이고, 숨기며 그렇게들 살았다.
사랑과 정.
이 둘은 외적인 표현과 내적인 표현, 적극적인 반면 소극적인 표현으로 대비를 이룬다. 뉘앙스 자체가 조금 다르다. 우리에게는 사랑보다 왠지 정이란 말이 훨씬 마음에 와 닿는다. 울컥 터질 것 같으나 절제된 감정, 없는 것 같으나 뿌리가 깊은 사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그 무엇, 그것이 바로 정(情)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서양문물이 우리와 동화된 지도 오래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도 많이 개량되었다. 하도 사랑이란 말을 빈번히 듣다보니 친숙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즈음 사랑은 기복이 심하고, 변화무쌍하며, 성립도 쉽다보니 사랑의 개념조차 모호해진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살고, 잃어 버렸다. 물질문명으로 많은 혜택과 윤택함을 누리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 정이란 것도 그 중에 하나이다. 나이가 들면서 정이 그리워진다. 사랑은 보일러 방처럼 뜨거운 것이라면, 정은 온돌방 같은 것으로 은근히 따스한 것을 말한다.
정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보자. 정감이 있는 은은한 사람이 되어 보자. 모두가 형광빛을 발하는 세상을 운운할 때, 자연채광같이 부드럽고 오붓한 정을 나눠보자. 사랑은 말로 표현하나, 정은 말이 필요 없다. 손 한 번 잡는 것으로 내면 깊숙히 따스한 정이 전하여 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