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사 66:1~14)
한 사람의 위대한 위인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 세계사가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타는 존재이지 결코 역사의 주관자는 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의 예정하심과 뜻이 진행되어 가는 것이 인류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그의 계획하심을 변개하거나 늦추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당신의 뜻을 관철시키십니다. 그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오직 중심이 하나님께 바로 서 있는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어쩌면 비천한 자들일 수 있고, 가난하고 지혜롭지 못한 자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큰 뜻을 온전히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단지 그 일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끔 주의 일을 하다보면 ‘나 아니면 안 돼’하고 교만을 떠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잘나서 하나님이 쓰신다고 큰 오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방법이 하나님께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모세가 공주의 자녀로 궁중예법을 갖추었을 때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를 광야로 몰아 인간의 지식과 방법을 다 버리게 한 후에 그를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많은 지식을 섭렵하고 있을 때 그를 쓰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눈을 세상의 것으로부터 멀게 한 뒤에 그를 쓰셨습니다. 이는 한 시대의 영웅이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난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자 할 때 ‘나는 부족해서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영적인 교만입니다.
네 힘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실을 도구로 쓰자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나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해 보겠습니다. 아멘!’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하나님의 부름에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언변과 능력으로 출애굽을 이룬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에 모세가 도구로 쓰인 것입니다. 모세가 아니라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들어 계획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모세가 끝내 못하겠다고 했더라면 하나님은 아론을 주축 삼으셔서라도 출애굽의 대역사는 일어났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홍해가 가로막아도, 여리고가 버텨도 멈추지 않고 진행되어 마침내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사울 대신 다윗을, 와스디 대신 에스더를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셨던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언젠가 저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회의를 하는데 제가 너무 피곤하여 다리를 쭉 뻗고 반쯤 누운 자세로 있자 예수님이 벌떡 일어나 나가시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라 ‘예수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얼마나 열심히 주님의 일을 했습니까?’ 했더니 예수님이 저를 돌아보시며 ‘피곤하면 쉬어라. 너 아니면 사람이 없는 줄 아느냐?’ 하시는 겁니다. 정말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저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일에 소홀함이 없으려고 매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촛대가 다른 곳으로 넘어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쓸 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으셔서 우리를 택하여 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은 곧 우리에게 축복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 분의 뜻에 오직 ‘예’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집회는 수월하지 못했습니다. 집회를 배설하기로 한 목사님이 그만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에 흡수되어 집회를 무산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리고 계셨습니다. 더 큰 종인 비탈리 목사를 들어 집회를 성공적으로 열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이번 집회를 자신이 주관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까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 때 저를 도와 일하던 통역관 중에도 자기 아니면 안 될 줄 알고 교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폐하시고 훨씬 더 뛰어난 통역관으로 붙여주셨습니다. 또한 각 나라마다 집회를 처음 배설했던 자들도 그랬습니다. 자기가 아니면 그 나라에서 집회를 할 수 없을 것처럼 방자하게 굴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더 큰 종들을 붙이사 하나님의 일을 더욱 크게 이루고 계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마태복음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동참하는 자는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것은 우리의 지혜나 지식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미련함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약한 자를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천한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을 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택하심에 감사하며 그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예수께서 열매를 달라 하실 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다가 뿌리까지 말라 죽었습니다. 그러나 건너 마을 어린 나귀는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았으나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자신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벗어 놓은 옷가지 위를 걸었고 ‘호산나’ 찬미를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원해서 해야 합니다. 일거리는 찾아서 해야 합니다. 내게 있는 달란트를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재물과 건강, 그리고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 놓을 때 하나님은 당신을 기억하사 구름 없는 아침햇살 같은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택하심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어서 나를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시다면 하나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로도 사람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는 필요하면 만들어 쓰실 수 있으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택하여 쓰심은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당신의 일에 동참시키어 동역자로, 당신의 친구로 삼으사 우리를 만민 위에 아름다운 이름으로 뛰어나게 하시며,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쓰시고자 할 때 ‘나를 쓰소서!’ 하고 당신을 내어 놓으십시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나 당신의 도구가 되기 원합니다.’ 라고 고백하십시오. 그 분은 부족한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지식과 힘과 능력을 주시사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실 것입니다. 당신의 순종하는 마음 하나로 하나님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분께 순종하고 내어 맡길 때 당신은 한 시대의 획를 긋는 위대한 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당신을 쓰기 원하십니다. 선뜻 그에게 나아가 그의 부름에 답하십시오. 이것이 인생의 참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