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숨기지 말고 자랑하라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명예나 부귀입니까? 명성이나 지식입니까? 그것은 그다지 귀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가장 귀한 것은 우리의 육체입니다. 그래서 ‘명예를 잃었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돈을 잃었으면 반을 잃은 것이나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믿는 사람들 중에 육(肉)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입니다. 음식도 중요하지만 그릇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릇이 깨지면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듯이 육체가 병들고 나약해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그가 가장 중점적으로 하신 일이 바로 육체의 병을 치료하신 것이었습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찾아다니시며 그들을 자유케 하심으로 육체의 귀중함을 깨우치셨습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듭니다. 영·혼·육은 유기적인 관계입니다.
세상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병은 자랑해야 산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병을 숨기다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병을 자랑해야 도울 자가 있게 됩니다. 세상 방법으로는 유능한 의사를 소개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여호와 라파’, 즉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람 왕 벤하닷의 군대장관으로 외향은 멋있었지만 속은 썩어 가는 문둥병환자였습니다. 그는 병을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스라엘 몸종이 이를 알고 엘리사를 소개한 것입니다. 더욱이 아람 왕에게까지 병에 대해 말하자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를 써주며 치료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머나먼 길을 간 나아만 장군에게 엘리사는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오라고만 합니다.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엘리사의 푸대접도 화가 난 요인이겠으나 그는 요단 강물에 들어가려면 그의 투구와 갑옷을 벗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그의 종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함이리이까(왕하5:13)’. 나아만 장군은 그 말을 듣고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그가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살이 깨끗해졌습니다. 나아만은 병을 자랑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목적을 위하여 자존심을 버리는 일을 어려워했습니다. 대개 교회의 중추적인 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주의 종인데 어떻게 병이 들었다는 말을 하나? 남들이 뭐라고 할까?’ ‘내가 이 교회 장론데 체면이 있지 어떻게 대놓고 안수를 받을 수 있담?’ 그래서 쉬쉬하다 호미로 막을 병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체면이 중요합니까? 목숨이 귀합니까? 목숨이 끊기면 자존심도 같이 죽는 겁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버리고 주 앞에 아뢰면 가장 귀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이었습니다. 그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왕의 체통을 벗어버리고 방성대곡을 하며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이 그의 목숨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프다고 살려달라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주의 종에게 안수 받는 것이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이 아플 때 엄마 앞에서 체통 지키며 곰처럼 참습니까? 엉엉 울어대고 난리 법석을 떨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린 자식입니다. 그저 여기가 아프니 고쳐달라고 하면 하나님의 치료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께 개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래도 좋사오니 내 딸만 고쳐달라’고 애원합니다. 주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진정한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반기를 드는 것으로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이란 의지할 자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의심을 버리고, 나의 생각을 버리고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당신의 아픈 곳을 내 보이십시오. 병든 모습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치료하십니다. 병원에 갔으면 아픈 곳이 치부일지라도 의사에게 숨김없이 보여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당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낱낱이 보이십시오.
병을 자랑하면 기도의 동역자가 생깁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형제요, 자매입니다. 외줄보다 삼겹줄이 강한 것처럼 합심기도는 상달되는 힘이 큽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두 해 전인가 제가 미국 집회를 하던 중에 내출혈을 일으켜 눈의 핏줄이 터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집회를 마치고 귀국한 저는 우리 성도들을 볼 일이 내심 걱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목사가 눈이 퉁퉁 부어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여린 심령들의 마음이 상할까하는 염려에서였습니다. 그래서 몇 주를 쉴까 생각도 했으나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용기를 내 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다같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저를 위해 많은 성도들이 금식을 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던 것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병은 자랑해야 합니다. 마음의 병도, 가정의 병도, 기업의 병도, 국가의 병도 자랑하면 살 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IMF란 위기를 만나야 했습니까? 국가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도록 쉬쉬하다 당한 봉변입니다. 이처럼 일찍 공개하면 약으로 될 것도 쉬쉬하면 수술을 해야 하는 중병이 되고 죽기도 하는 겁니다. 병의 원인은 귀신입니다. 악한 마귀의 목표물은 예수를 잘 믿는 자들입니다.
어부는 선상에 있는 잡은 고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에 돌아다니는 고기를 목표물로 삼는 것처럼, 악한 마귀는 예수 믿지 않는 영혼은 이미 거둬 올린 고기와 같음으로 관심이 없고 예수 믿는 자를 잡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방패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이름의 권세인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모든 악한 것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 예수 이름으로 우리 육체와 기업, 교회와 가정의 병을 퇴치해야 합니다.
‘입이 서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서울거리라도 물어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말을 하면 방안이 나옵니다. 입 다물고 인생의 길을 헤매는 자는 답답한 사람입니다. 말을 하세요. 솔직하게 모른다고, 아프다고, 어렵다고, 힘들다고 말하면 주위사람들이 듣고 도울 것이며, 하나님이 들으시고 해결하실 것입니다. 곰처럼 끙끙거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자수하여 광명을 찾으세요. 하나님이 분명히 도우실 것입니다. 진실되게 고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지금 병을 앓고 있습니까. 주께 가감없이, 모두 다 아뢰십시오. 그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 전체가 무병장수하여 미락(美樂)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외줄보다 삼겹줄이 강하듯 합심기도는 넘지 못할 벽이 없다
이기려면 버려라 자존심은 성공의 장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