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엡 1:15 ~19)
이조 500년사를 보면 철저한 계급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궁궐에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4대문 안에 사는 자들이 있고, 성 밖에 사는 사람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행색이 달랐고, 거처와 생활권이 달랐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도 분명히 계급이 있습니다. 단지 이조 사회처럼 출신성분으로 그것이 구분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주를 위해 일한 대로, 행한 만큼의 대가로 그 신분이 결정되는 점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낫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보이는 이 땅에 모든 것을 건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유토피아를 쌓아보려고 아등바등 거리고, 좀 더 손에 쥐고, 좀 더 높아지고, 좀 더 오래 살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다 빈 손들고 갔습니다.
이 땅은 잠시 지나는 나그네길입니다. 영원히 정착하는 목적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땅은 꽃의 영광과 같은 것입니다. 잎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처럼, 이 땅의 삶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허무한 것이며, 무가치한 것입니까. 보이는 세계가 전부라면 전도자의 말처럼 다 헛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나라를 보장받은 자입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전9:4-5). 이 말씀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와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지명하사 부르시고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사 성령으로 인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 상을 쌓을 기회터전을 마련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상이란 아무나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하고 애쓴 자가 차지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많은 상이 있으며 그에 따른 여러 계층이 성립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주를 위해 힘썼으며, 얼마나 주를 위해 참았으며, 얼마나 주를 위해 버렸는지에 따라 평가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과 면류관과 상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체험한 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위해 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모진 핍박을 마다하지 않고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그가 담대히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를 본 바요, 만져본 바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예수 중심 교회가 세상의 핍박에 굴하지 않고 굳건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는 그 나라에 소망을 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 눈에는 미친 자처럼 보이고, 어리석은 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쳤어도 예수 때문에 미쳤고, 우리가 어리석게 보여도 예수의 도를 따르는 것이므로 관여하지 않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凌辱)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모세는 하나님을 위해 받는 모함과 핍박은 곧 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굽에 있는 모든 보화보다 큰 상이니 얼마나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잠시 동안의 고난이 두려워 이 큰 상을 걷어차겠습니까. 그 날을 늘 기다리며, 그 나라에 소망을 두면 이 고난과 핍박은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이 상, 곧 영광의 풍성함을 알기를 원한다’라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상을 알면 삶의 목적과 이유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 가족 때문입니까. 아니면 일신의 안일 때문입니까. 이는 목적설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썩어질 것들입니다. 그것을 위해 살다가는 영원히 버림받습니다. 썩어질 것을 추구했으니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나라를 목적하고 그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 나라를 위해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되어야 큰 상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사람의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는 세상의 자와 다릅니다. 이는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출세해야 명성과 부를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며, 명예순으로 상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얼마나 그 나라와 의를 위해 뛰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십 년 전쯤에 제가 지방 집회를 마치고 지쳐 김포공항에 내렸습니다. 거기에는 전도사와 많은 집사님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기도처 입당예배를 인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너무 지쳐 도저히 갈 수 없었으나 그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바로 기도처를 향해 갔습니다. 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그들과 식사를 하는데 초등학교 4학년생인 한 남자아이가 제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하늘나라에 가면 누가 잘 했는지 상을 받겠죠? 그 때 우리 목사님이 목사님대표로 상을 받을 거예요. 일등이 대표로 받는 거잖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 하나님이 지친 나를 위로하시는 거구나. 어린 아이를 들어 내게 새 소망을 주시는 구나’ 저는 그 아이의 말을 평생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말한 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고 오늘도 오대양 육대주를 불철주야 복음을 들고 뛰어 다니며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 뿐이라면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남들처럼 놀러 다니길 합니까. 남들처럼 뻐겨보길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산하고 계시니 우리야말로 가장 복 있는 자인 것입니다.
있을 때 주를 위해 일합시다. 젊을 때 주를 위해 봉사하고, 물질 있을 때 주를 위해 쓰며, 시간 있을 때 헌신합시다. 주를 위해 사력을 다하면 주님이 그 날 잘했다 칭찬하실 것이며, 상을 주실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중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 날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이 다릅니다. 이 땅에서 당신의 행적에 따라 영광의 척도가 결정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구원 얻는 믿음의 단계를 벗어나 왕권을 얻는 사도적 신앙으로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길은 좁고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주님이 저울을 들고 측량할 때 부족한 자들이 없어야 합니다. 차고 넘쳐 주님께 칭찬 받고 상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도 사도 바울처럼 기도합니다. ‘주여, 저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당신이 저들을 왜 부르셨는지를 알게 하시고,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당신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를 저희로 알게 하소서’
할렐루야.
우리는 이 땅의 시민권자가 아니요 더 나은 본향을 그리는 이방인이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음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