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이런 인사가 요즈음처럼 실감나게 들린 적이 없다. 안녕을 기약하지 못하는 불안심리가 고조되어 그런가 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심정으로 매사 조심스럽다.
후천적 장애인이 선천적 장애인의 수를 넘는다는 통계에서처럼, 곳곳에서 터지는 대형사고로 군중 속이 두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무인도에 홀로 살림을 차리자니 적막도 막강한 두려움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시대는 세밀한 기도가 필요하다.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을 찾고 그의 손길을 기대해야 한다. 아이들의 등하교길을 부탁드리고, 남편의 발길마다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집 안팎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지해야 무사할 수 있다. 작은 소리에도 숨죽이며 들어주시는 하나님만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해법이 된다. 조목조목 짚어가며 하루의 필요를 기도해야 하나님이 이를 채우시며 때를 맞춰 일하시게 된다.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개미 같은 작은 미물도 만드셨다. 그는 지극히 크시나 지극히 작은 것까지 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온 몸에 철갑을 두른들 재난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가 최고성능의 컴퓨터로 완전을 기한들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재난은 언제나 예고 없이 뒤통수를 친다. 그러므로 사방에 눈이 있어야 하며, 먼저 시간을 날아 앞서 봐야 한다. 그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평안이 어디에 있나. 안식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일까. 평화는 결국 피상적인 산물이 아닐까. 하루가 멀다하고 혼란이 난무하고, 전쟁의 공포가 있고, 이상기후로 세상은 난리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다. 하나님만이 안전지대다. 하나님 안에 참 평안이 있고 평화가 있다. 하루를 하나님으로 시작하면 하루가 무사하고, 일 년을 하나님과 함께하면 일 년이 안전하고,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면 저 넘어 영원한 안식까지 얻게 된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거든 ‘물론입니다. 늘 안녕하지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계시거든요.’ 라고 답을 가르쳐 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며, 방패가 되시며, 요새가 되신 것을 만인에게 알려 공포와 위험에서 자유할 수 있게 하라. 하나님 안에 영원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소리 높여 알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