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감사하며 살자 (전 3:1 ~22)
아무도 자신의 장래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단 몇 분 후에 일어날 일도 우리는 전혀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은 그 불안을 제거해 보려고 점쟁이와 무당을 찾아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의 지배 하에 있는 그들은 다만 거짓으로 불안을 달래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번 대구 지하철 화재는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참사였습니다. 한 정신 질환자의 광란으로 빚어진 어처구니없는 일로 너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아무도 이런 대형사고가 일어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희생자들도 몇 분 후의 재앙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입을 틀어막고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공포에 질려있는 모습이 한 아마추어 사진 기자에 의해 찍혀져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그런 불행이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장래 일은 우리에게 예측불허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 대로 만드셨습니다. 당신의 생기를 우리에게 불어 넣으시사 우리를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에게 한계를 주셨습니다. 바로 내일 일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그 분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게끔 하신 것입니다. 내일이 우리 권한 밖의 것임을 알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만일 내일을 다 알게 하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루하루를 기도하며 살았겠습니까?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장래를 알았다면 어쩌면 운명론자가 되었거나 세월의 방랑객이 되었을 것입니다. 야비한 술수의 소유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생각이 크시고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므로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허용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형통한 날이 있는가 하면 곤고한 때도 만납니다. 기쁠 때가 있는가 하면 슬플 때도 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삶의 양면을 병행하게 하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형통하기만 하면 교만과 방종이 난무할 것이고, 곤고한 날이 계속되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생을 저주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형통할 때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뵈옵고, 곤고할 때 십자가의 주를 생각하라고 이 둘을 병행케 하셨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길흉화복(吉凶禍福)에 변화가 많아 예측이 어렵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논리에 합당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는 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요 그 안에 깊은 뜻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전8:17)’. 이번 지하철 사고를 당한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으나 그 안에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경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만나는 고난이 애매한 것 같으나 그것이 결국 유익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우리 삶의 우여곡절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영원한 승자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강자도 없습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며 호언장담할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바벨탑도 무너졌습니다. 천지를 호령하던 벨사살 왕도 하룻밤에 죽어나갔습니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하만도 장대에 달려 죽었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사람의 지혜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과 만인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면 어두움이 나를 엄습하지 못하며 악한 것이 나를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까? 불확실한 이 시대를 어찌 살아야 합니까? 성경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分福)이라’.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일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가족과 내가 소속된 교회와 직장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만족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거기에서 낙을 누리는 자가 지혜로운 자인 것입니다. 인생은 일생(一生)입니다.
일생을 아등바등하며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는 삶을 누릴 자격이 결여된 자입니다.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당연히 기뻐야 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배려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남을 나를 사랑하듯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오 리를 가자하면 십 리를 동행할 마음을 가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을 겸하여 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남이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그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는 여유 있는 삶 속에 기쁨이 싹트는 것입니다. 티격태격한다고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움켜쥔다고 내일이 더 부하게 됩니까? 헉헉거리며 뛴다고 성공합니까?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생사화복이 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성공이 있고 안정이 있으며 하나님 편에 부귀와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태평주의자가 되어 세월을 허비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조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넓게 보고 깊이 생각하고 큰 아량을 가지고 살자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있을 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태어난 순서대로 가지 않습니다. 대구 지하철에는 아주 어린아이도 있었고 이제 꿈을 펼칠 나이인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시면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부름에 응해야 합니다. 이 한정된 삶을 기쁨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 때 생이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낙망치 않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크게 도우실 것이며 형통 속에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면 갑절의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갑시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십자가 앞에 내어놓고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라도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머리털을 희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고뇌로 문제가 사그라지지 않는다면 그 일을 하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내 짐을 그 앞에 내려놓는 것이 현명한 삶인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주관자를 다시 생각해 보고 우리 인생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근본적인 행복과 평안이 있음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내일은 능력 밖이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이기려면 버려라 깨끗한 가슴에 우주를 품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