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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경쟁력 있는 한 해가 되자 (막9:38 ~50)

150호 · 2003-01-12

어느덧 2003년의 첫 주일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년에 손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게중엔 이 말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예닐곱 살짜리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게의치 않고 무려 50번이나 반복하고 또 반복하게 했습니다.

매사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인생의 삿바줄을 단단히 부여잡아야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처럼 주어진 기회에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모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품질이 우수한 제품이 시장에서 대우받는 것처럼 우리 각자 또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이 사회에서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무한 경쟁시대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지요. 때문에 내가 경쟁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타인과 겨룰 수 없으며 내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남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께선 ‘머리가 되고 남에게 꾸어주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다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내 단체를, 내 기업을, 내 교회를, 내 나라를 다시 신축해야 합니다. 내재되어 확산되고 있는 암적 요소를 제거하고 다시 태어나야 경쟁사회에서 경쟁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네 손이 범죄 하였거든 찍어버리고, 발이 실족하였거든 발을 찍어버리고 네 눈이 범죄케 하거든 눈을 빼내어 버리고 천국에 들어가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천국에 입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에 대해 즉각적이고 단호한 대처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 말씀은 세상에서 천국 생활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길을 방해하는 암적 요소가 그 무엇이든 제거해야 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찍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혈연으로 이어진 것이든, 학연의 관계든, 지연의 관계든 암적 요소는 반드시 제거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암을 그대로 방치하면 죽게 됩니다. 기업에서 암적인 존재나 요소를 절단하지 않으면 그 기업은 절대 성장할 수 없으며, 경쟁력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능력이 없는 자나 자기계발을 늦추는 자를 기업의 요직에 앉혀놓으면 기업은 경쟁사회에서 퇴물이 되어 퇴출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암적인 자를 그대로 안고 있다면 그 교회의 부흥은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은사 없는 목사, 기도하지 않는 전도사가 버젓이 교회에 있다면 교회는 점차 축소될 것입니다. 오른팔 같은 자라 할지라도, 눈 같은 장로라도 그가 암적 존재라면 과감히 잘라내야 다른 성도들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암이란 사방에 다 입이 있으므로 무섭게 먹어들어 갑니다. 썩은 귤 하나를 그대로 두면 나중 상자의 귤이 다 썩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인 귤을 꺼내 제거해야 나머지 귤이 관리되는 것처럼 썩은 자는 빼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만사에 불평 불만으로 가득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하나로 인하여 깨끗한 심령까지 멍드는 것을 종종 봅니다. 나쁜 것은 더욱 빨리 전염됩니다. 불평과 불만은 지혈되지 않은 상처와 같아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단체가 실신하다 심해지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자를 끼고 있으면 천국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손을 잘라내려면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픔 때문에 이것을 미루거나 망설인다면 손으로 인하여 온몸이 계속 아프게 되고 결국 손으로 인해 죽게 됩니다. 거목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숱한 가지치기의 아픔이 그 안에 서려 있는 것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목이 되니 왕궁의 대들보도 되고 큰 건물의 재목으로 쓰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저 방치해 두면 땔감으로 밖에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각 개인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불량한 것들을 없애야 합니다. 자신에게 관대한 자는 결코 경쟁사회의 주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 우유부단한 성격, 추진력 부재, 나태함, 몸에 젖은 타성 등은 나를 죽이는 암적 요소이기 때문에 잘라내야 합니다. 큰 것이 원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큰 불량요소는 누구나 잘라냅니다. 그러나 작은 것에는 무신경하기 일쑤입니다. 작다고 무시한 것들이 산이 되어 나중엔 나를 누르고 조이고 죽이는 것입니다. 감기를 우습게 알다 폐병으로 죽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라톤 경기를 취재한 한 기자가 우승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코스가 가장 난코스였습니까?’ 그러자 우승자는 말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코스가 아니라 제 신발 속으로 들어온 작은 모래알갱이였습니다. 그것이 경기 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인생은 도상 위의 주자라고 했습니다. 우승자는 자신이 달릴 코스는 점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일, 신발 속은 점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 때문에 우리가 주저앉게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잘 경영하려면 점검이 필수입니다. 점검 부재현상이 사고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작은 불량성분이 암적 요소로 자라는 것이니 빨리 제거하는 결단을 합시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를 제대로 평가해야 경쟁력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속에 있습니다. 위대한 말을 하는 사람보다 그 말을 듣고 실행하는 자가 더 위대합니다. 오늘 마음의 결단을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시대는 시간을 다투며 변화하고 있으며 무수한 자들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결단을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벌써 몇 걸음 전진을 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진 자는 마치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소금 꼴이 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오가는 사람 발에 밟히는 것처럼 경쟁력을 잃은 사람은 앞질러 가는 자들의 발에 짓밟히는 것입니다.

올해는 정말 경쟁력 있는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기업이, 교회가, 우리나라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를 바랍니다.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을 과감히 배척하고 나아가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도 과단성에 있습니다. 세상으로 벌린 손과 세상으로 향하는 발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빼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을 견디면서도 천국은 꼭 가야만 할 곳이기에 비장한 결단이 촉구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공을 향한 길도 결단을 요구합니다. 편함과 안일함과 향락을 박차고 일어나 꼭 쟁취해야 할 것이기에 결단이 필요합니다.

경쟁시대의 활로에 선 당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솜옷을 입고 수영하겠노라고 나선 엉뚱한 모습은 아닙니까? 수영할 때 옷은 가벼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에 가라앉게 되어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의 옷으로 인해 물에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쌓인 사람들을 등에 업고 수영하면 같이 물에 빠집니다. 게으름을 떨어 손발을 가끔 저으면 물에 가라앉습니다. 구차한 것들을 벗어버리고 열심히 힘껏 정신을 차리고 가야 일등 하는 것입니다. 늘 감사함으로 살며 나태한 자신에게 초달을 아끼지 않는 삶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아닌 성공의 초석이 되는 결단이 오늘 각자의 마음에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불평과 불맘은 지혈되지 않는 상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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