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진주라니
사막에서 진주라니
어떤 사람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가지고 있던 식량과 물도 다 떨어져 그는 며칠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결사적으로 걸었다.
마침내 사막 가운데서 작은 천막 하나를 발견했다. 이제 살았구나 생각한 그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간 것 같았다. 그는 혹시 물병에 물이라도, 혹 먹을 것이라도 있을까 해서 여기저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모래에 묻힌 주머니 하나를 발견했다.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 그 사람은 미친 듯이 주머니를 헤쳐서 열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좋고 큰 진주알이었다. 천막에 머물렀던 사람들 중 하나가 귀한 보석을 잊고 그냥 간 것 같다. 그 사람은 손에 쥐었던 진주를 모래에 던지며 외쳤다.
“겨우 진주였단 말인가? 내게 지금 진주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 사람은 맥이 풀려 사막에 누웠고, 그렇게 죽어갔다.
사막에서 진주는 무용지물이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가 보석이며, 생명이며 복음이다.
복음이 무엇인가? 죽어가는 자에게 복음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고, 아픈 자에게는 고침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며, 가난한 자에게는 부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다. 죄로 인하여 영멸될 인간들에게 복음은 예수로 인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모든 소식을 전하시러 예수가 이 땅에 오셨다(눅4:18).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신은 사막에서 주운 진주와 같다. 예수를 믿어라.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르호봇 신앙
작은 가게를 오래 지켜온 사람이 있었다. 장사가 잘되자 바로 옆에 더 크고 화려한 가게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저 가게는 끝이야.”
하지만 그 주인은 싸우지도 불평하지도 않고, 그저 늘 하던 대로 문을 열고 손님을 정성껏 맞이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가게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결국 큰 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가게를 키우는 건 내 일이지만, 사람을 머물게 하는 건 내 힘이 아니더라.”
이삭은 우물을 팔 때마다 문제가 생겼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자기 것이라고 다투었다. 첫 번째 우물은 ‘에섹’이라 불렸다. 다툼의 자리였다. 두 번째 우물은 ‘싯나’, 대적의 자리였다. 보통이라면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삭은 싸우지 않았다. 그는 그냥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우물을 팠다. 마침내 다툼이 없는 곳에서 이삭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이것이 르호봇 신앙이다(창26:12~22).
이삭은 우물 때문에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복의 주인이심을 믿었다. 그래서 빼앗겨도 무너지지 않았고, 물러서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르호봇은 단순히 넓은 땅이 아니다. 르호봇은 마음이 넓어지는 믿음이다. 사람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여유,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이삭은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브엘세바로 올라간다. 그리고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그 후에야 우물이 나온다.
순서가 중요하다. 우물보다 하나님이 먼저였다. 영혼이 잘 돼야 범사도 잘되고, 건강도 온다(요삼1: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약속하셨다(마6:33).
우리는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쓰고 있는가. 혹시 복을 지키려다가 하나님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잃어도 괜찮다. 하나님이 다시 채우시기 때문이다. 르호봇은 싸워서 얻는 자리가 아니다. 르호봇은 하나님께 맡긴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르호봇 신앙이란 억지로 지키려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넓혀 주실 것을 믿고 물러설 줄 아는 믿음이다.
임택함 목사
자랑스러운 우리 교회
나는 우리 교회가 참 자랑스럽다. 우리 교회가 너무 좋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고,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을까! 늘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다.
얼마 전, 중고등부 학부모 초청 예배에 다녀왔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과 은혜로운 설교와 섬김 등에 이번에도 역시나 감동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좋은 곳에서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청장년부에서도 매달 이시대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린다. 목사님의 명설교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복이다. 많은 지체들이 함께 나와 가까이에서 은혜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이 힘들 때, 여러 가지로 고민이 있을 때, 그때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내가 우리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땠을지 상상도 안 된다.
한때 사람들이 어느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면 쭈뼛대며 얼버무리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 괜히 난처한 상황이 생길까 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혹여 누가 이단이니 시비를 걸 때면 그럴 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우리 교회는 이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목사님은 예수님만 전하고, 예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가르치신다고. 오직 성경대로, 예수님 뜻대로 행하는 교회라고.
우리가 예수중심교회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예수를 전하는 교회이다. 다른 교회가 전하는 예수나 우리가 전하는 예수는 똑같다. 예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동일한 말씀으로 오직 성경 한 권만을 전한다.
우리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분들이나 봉사자분들을 보면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시는 게 몸소 느껴진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면 저렇게까지 하실까 싶은 마음이 든다.
총회장 목사님도 연세가 있으시고, ‘정말 인간의 생각으로는 가능할까?’ 싶을 때가 많을 정도로 복음 전파에 힘쓰시는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면,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면…’, 이런 마음이 들며 뭉클해진다. 이런 교회에 다닌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악한 세대에 영적으로 깨어있고 성령 충만으로 무장되어 있을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을 붙잡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조급하고 염려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는 총회장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예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매일 쫓아내고, 기도로 성령 충만을 입는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부심을 갖자!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선택받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복인 줄 알고 그 축복을 모두 받아 누리자!
정효경 집사
어릴 때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
오늘의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다. 더 좋은 환경, 더 나은 배움, 더 넓은 기회를 주고 싶어 애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아이 안에 세워져야 할 것은 성취의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일지 모른다.
어릴 적 마음에 심긴 말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아기에 들은 짧은 성경 한 구절, 잠들기 전 손을 모으고 드린 기도, 잘못했을 때 부모가 말씀으로 조용히 붙잡아 준 한마디는 시간이 흘러도 아이 안에 오래 남아 삶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잠22:6).
돌이켜 보면, 내 사춘기 시절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지나게 한 것도 결국 말씀이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힘들고 혼란스러운 순간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 준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설교 말씀을 통해 내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왔고, 실제로 살아내야 할 기준이 되었다. 특별히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지나며 들었던 설교의 가르침들은 지금도 내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던 말씀, 욕심이 죄를 낳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는 경고의 말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가르침, 그리고 생각이 결국 삶의 열매로 이어진다는 권면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기준이 되어 주었다. 순간의 감정에 흔들릴 때도,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설 때도, 그때 들은 말씀이 내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유아기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깊이 믿게 된다. 성경 또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권면하며, 어려서부터 배운 말씀이 삶의 방향을 세우는 힘이 됨을 보여준다.
유아기 말씀 교육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변할수록 아이의 마음에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된다. 하루 한 구절이라도 좋고, 짧은 기도 한마디라도 괜찮다. 그렇게 들려준 말씀이 언젠가 아이의 신앙이 되고, 신앙 양심이 되고, 삶의 기준이 될 것이다. 오늘 심어준 말씀이 내일의 아이들의 인생을 붙드는 능력과 힘이 되고 방향이 될 것이다.
양은정 생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