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목소리
우리의 신앙은 관념적인 생활이 아니며, 또한 습관도 아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대단히 부담스럽고 어려울 뿐이다. 그러나 내 영혼이 신령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되고 익숙해지면 유익이 많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그런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목소리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주장과 고집과 사상이 정상적이라고 우겨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인간의 사상이나 관념, 이론과 지식 등이 부서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의 목소리에 익숙한 자들이다. 그 목소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영적 생활은 실패하고 만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주님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듣는다. 그리고 그대로 행동한다. 모세는 가장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직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그 명령대로 따를 때, 바다가 갈라지고 반석은 물을 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광야를 통과하였다.
노아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방주를 만들었다. 방주를 만들 때 주님의 목소리는 그의 영혼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음에 계속 들려왔다. 그의 정신은 더욱 맑아졌고 방주를 완성한 후에 마침내 그의 가족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자에게 놀라운 이적이 나타난 것이다.
바울도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바울이 “주여, 뉘시오니까?” 하고 묻자, 주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셨다(행9:4~5). 같이 가던 사람들은 듣지 못했지만, 바울은 주님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래서 주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그 목소리를 통하여 이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이적과 상관이 없다.
마르다는 주님이 나흘 전에만 오셨어도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느냐를 상관하지 않으신다. 주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똑같은 능력이 있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의 목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하는 순종의 행위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주님의 목소리에 얼마나 익숙한가에 따라 우리 신앙생활의 기쁨의 정도가 달라진다. 성도는 모든 기회를 주님의 목소리로 가득 채우려 하고 그 목소리에 영혼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요일4: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