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여러분, 인생은 주어진 운명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말로 만드는 작품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다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가나안에 들어간 자가 있고, 어떤 자는 못 들어갔습니다. 누가 그 땅에 못 들어가게 했나요? 그들을 막는 옆의 나라들이었습니까? 사주팔자가 막았나요? 아닙니다. 그들이 생각과 말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그 부정이 전염되어 부정적인 말을 뱉은 자들은 그 말대로 광야에서 다 죽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뿌렸기에 가나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우리 안에는 생각이라는 주머니가 있는데요, 그 주머니에는 말
(言)이란 씨가 들어있습니다. 주머니 안에는 좋은 말도 있고, 나쁜 말도 있고, 긍정적인 말도, 부정적인 말도, 아름답고 귀한 말도, 천한 말도 있습니다. 선한 말도 있고, 악한 말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떤 씨를 뿌릴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 선택입니다. 우리가 좋은 말을 뿌리면 좋은 열매가 맺히고, 긍정적인 말을 골라서 뿌리면 긍정적인 열매가 맺힙니다. 부정적인 말을 골라 뿌리면 부정적인 열매가 맺히게 되고, 악한 말을 골라 뿌리면 악한 열매가 맺힙니다. 농부가 배추씨를 뿌렸는데 사과가 나던가요? 그럴 리 없지요. 성경에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다’고 딱 못 박아 말씀하셨고(마7:16),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명의 강도도 같이 매달렸습니다. 두 강도의 운명은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강도는 영생을 얻어 낙원에 갔고, 다른 강도는 영멸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을까요? 사주팔자대로 된 겁니까? 아닙니다. 말 한마디에 운명이 갈린 겁니다. 좌편의 강도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예수님을 비방했고, 우편의 강도는 좌편의 강도를 꾸짖으며,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로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운명이 기구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산 줄 아셨지요? 아닙니다. 삶을 돌이켜보세요. 내가 어떤 말을 뿌렸는지 생각해보세요. ‘안 된다’, ‘죽겠다’, ‘망할 놈의 인생’, ‘힘들어 죽겠다’, ‘나는 안 돼’, ‘내 팔자에’…. 이런 말을 많이 뿌렸기에 그대로 열매가 맺힌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깨달았으니 운명을 바꿔야지요. 어떻게 하면 운명이 바뀝니까? 이제라도 좋은 말, 긍정적인 말, 선한 말, 믿음의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인생이 펴요, 인생이 멋지게 돼요. 아름다운 미래가 열린다니까요.
농부가 해충으로 인해 한 해 농사를 망쳤다고 농사를 접나요? 다 뽑아내고 밭을 갈고 씨를 다시 뿌리지 않습니까? 인생은 1모작이 아닙니다. 내 생각에 따라 2모작, 3모작, 4모작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생각을 뽑아버리고 다시 좋은 씨를 뿌리면 대풍을 맞게 됩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라고 말할 때 좋은 상황이라 그렇게 말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고 싶다’고 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모든 것이 잘 된다’고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여지 없이 그 씨가 열매를 맺어 사울을 이어 왕이 되고 늙어서까지 부귀가 넘쳤습니다. 다윗의 인생 1모작은 힘들었지만, 2모작은 풍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말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운명에는 귀가 있어 내 말을 듣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말한 그대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와 못 살겠다’라고 말하면, 귀를 만드신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그럼 갈라서게 해야지.’ 해서 이혼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운명을 결정하신 건가요? 아니요, ‘못 살겠다’고 말한 내가 결정한 겁니다. 하나님은 말대로 행하신 것뿐입니다(민14:28).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신30:14~15). ‘네 운명은 네가 결정한다’는 말씀입니다.
잘 살고 싶습니까? 건강하고 싶습니까? 멋지게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세요. 생각이 바뀌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뀝니다. 인생을 바꾸는 근원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죽어도 못 보는 마귀는 무엇을 공격하겠습니까? 바로 생각입니다. 마귀의 1차 공격 목표는 ‘생각’입니다. 마귀는 먼저 생각 속에 부정과 두려움과 의심이 들게 하고, 그대로 말의 씨를 심게 합니다. 그 씨가 자라 결국 비극의 인생을 만들게 하지요. 가룟 유다를 보세요. 마귀는 그의 마음에 생각을 넣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13:2). 그 생각의 결과로 그는 예수를 팔고 그 죄책감에 결국 자살하고 말지 않습니까?
마귀는 ‘난 끝났다’, ‘포기해라’, ‘과거를 생각해봐라’ 이런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이럴 때 그것에 사로잡히면 인생이 망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그것을 쫓아버리고, 하나님의 주신 생각으로 바꾸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주 안에서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 자식은 내가 지키고 가르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 해주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자식이니 하나님도 우리가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십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겠습니까? 혹 세상 부모는 능력이 안 돼서 해주고 싶어도 못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인이신 하나님이 무엇을 못해주겠습니까? 그럼에도 없고, 안 되고, 망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의 주머니에서 부정적인 말을 뿌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사화복 중에서 굳이 화(禍)을 뿌리면서, 복이 왜 안 맺느냐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까지 하나님이 바꿔주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를 절대 초월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마음, 곧 생각을 새롭게 바꾸면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한나는 무자한 팔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나도 어미가 되어 보리라, 나도 아들을 얻고 말리라.’ 그의 생각이 바뀌자 말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이 당신의 생각을 바꾸사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내 생각과 말이 바뀌면 하나님의 생각도 바꿀 수 있는데, 우리 인생 정도야 못 바꾸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문제가 없다’고 저는 41년을 뿌렸습니다. 사실 그 긴 세월 동안 왜 문제가 없었겠습니까만, 저는 믿음으로 그렇게 뿌렸더니 정말 지금은 문제가 없습니다. 잘 나가고 있습니다. 말이 열매를 맺은 겁니다.
우리 인생의 운전대는 내가 쥐고 있습니다. 직진할 것이냐, 우회전할 것이냐, 좌회전할 것이냐, 아니면 후진할 것이냐, 이 모든 선택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생각과 말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겠다’고 말로 시인할 때 내세까지 좌우할진대, 말로 현세 또한 바뀔 것입니다.
생각과 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할렐루야!
생각이 바뀌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천국과 지옥도
네 말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