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보다 아름다운 삶
벚꽃보다 아름다운 삶
매년 4월이 되면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벚꽃인데요, 분홍빛을 가득 담은 벚꽃이 군집을 이루며 활짝 필 때, 그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장관입니다.
하지만 봄을 대표하는 가장 화려한 이 벚꽃의 향연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활짝 피는 시기는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을 만큼 금방 지나갑니다.
그런데 벚꽃이 항상 피어서 계절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 지금처럼 열광하지 않을 것입니다. 식상할 겁니다. 벚꽃은 자기의 때에 필 때 가장 빛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전도서의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고. 꽃이 필 때가 있으면 꽃이 질 때가 있고, 잎이 푸를 때가 있으면 낙엽이 되어 떨어질 때가 있고, 왕성할 때가 있으면 쇠퇴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아름답게 하신 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생은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짧고 보잘것없는 삶이 영원히 사는 세계를 결정짓기에, 사실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오직 현세를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의 세상,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죽은 다음의 세상을 준비하며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벚꽃처럼 짧은 일생이라도 벚꽃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기에 그날에 받을 상급과 면류관을 기대하며 예수를 위해 오늘도 뛰어봅시다.
최성경 전도사
사랑으로 지는 짐은 가볍다
사람은 누구나 짐을 지고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우리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져 지치기도 한다.
신앙의 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용서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며, 때로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신앙은 또 하나의 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 말씀은 언뜻 역설처럼 들린다. 짐은 본래 무거운 것인데, 어떻게 가벼울 수 있을까? 그 답은 사랑에 있다. 사랑은 짐의 무게를 없애지는 않지만, 그 짐의 의미를 바꾼다. 억지로 지는 짐은 무겁지만, 사랑으로 지는 짐은 기쁨이 된다.
한 소년이 어린 동생을 업고 길을 걷자 사람이 물었다. “무겁지 않니?”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짐이 아니라 제 동생이에요.” 같은 무게였지만, 소년에게 그것은 부담이 아니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무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기쁨으로 바꾼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의무로 감당하면 무겁고, 억지로 순종하면 지치게 된다. 그러나 사랑으로 순종하면 그 길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 된다. 사랑이 있는 순종은 자유를 낳고, 사랑이 있는 헌신은 기쁨을 낳는다.
많은 사람이 신앙을 무겁게 느끼는 이유는 요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랑이 식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으면 작은 일도 부담이 되지만, 사랑이 살아 있으면 큰 헌신도 감사로 감당할 수 있다. 짐의 무게를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사랑의 깊이다. 라헬을 사랑한 야곱이 7년을 ‘며칠 같이’ 느낀 것처럼(창29:20).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주신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그분과 함께 걷도록 부르신다.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은 억지로 걷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걷고, 사랑하기 때문에 감당한다. 그때 짐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통로가 된다. 사랑으로 지는 짐은 가볍다. 사랑 안에서 함께 나누는 무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참된 쉼과 평안을 경험하게 된다.
임택함 목사
믿음 위에 규율, 그리고 강력한 흔적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믿음 위에 규율, 그리고 강력한 흔적’이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나약하고 부족한 나를 스스로 일깨워 보고자, 많은 고민과 사유 끝에 만든 좌우명이다.
동기부여는 우리를 결단하게 하고 무언가를 시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끝에 결과를 맺게 하는 것은 목적을 향한 규율과 반복이다. 규율과 반복이 삶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들이 인생을 작품으로 만든다. 그래서 나는 믿음 위에 규율을 세우고 지켜, 짙은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아보고자 이러한 좌우명을 만들었다.
열매를 맺는 삶엔 자신이 세운 규율을 반복하고, 절제하는 고된 과정이 필요하다. 성과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두꺼운 교과서 책장을 매일 고독하게 넘기는 일이나, 묵묵히 육체의 한계를 이겨내는 고단한 훈련의 반복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화려한 동기부여만을 찾곤 한다.
하지만 총회장 목사님도 수없이 말씀하듯, 달인을 만드는 것은 지루할 정도의 묵묵한 반복과 훈련이다. 진짜는 바로 그 투박한 규율과 반복 속에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세상 사람들도 썩어서 사라질 영광을 얻기 위해 뼈를 깎는 반복과 절제를 감내한다. 하물며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바라는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으며, 인내와 절제로 묵묵히 견뎌내는 것.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이 아닐까?
믿음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서, 이 지루하고 치열한 절제의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의 삶이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흔적’이 되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게 되길 소망한다.
전호정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