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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다!

1353호 · 2026-04-12

돼지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다. 목이 경추와 연결되어 고개를 드는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땅을 파는 굴토성(掘土性) 습관에다, 땅에 떨어진 먹이만 주워 먹고 살다 보니 체형이 그러한 모습으로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야성이 남아있는 멧돼지는 그나마 낫다. 야생에서 생존하고 버텨야 하기에 목을 쓰는 일이 믾아서다. 그런데 사료에 길들여진 집돼지는 주는 먹이에 집착하다가 그만 목이 굳어 땅만 바라보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을 때가 있다. 바로 넘어졌을 때다. 넘어져야 비로소 하늘을 본다. 하지만 일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땅만 보고 살아간다.

사람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안뜨로포스(ανθρωπος)’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의미다.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로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그런 우리가 돼지처럼 땅의 일만 생각하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병들고 문제가 있어 막히고 넘어져 어려울 때, 쓰러져 고통스러울 때는 그나마 하나님을 바라보는 듯하다가, 일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늘을 외면하고 살아가서야 되겠는가 이 말이다!

현대사회를 ‘3무(三無) 시대’라고들 한다. 무감각하고,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시대라는 의미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니 무감각한 세대요, 내 문제가 아니면 외면해 버리니 무관심한 세대다.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지는 자 없으니 이 또한 무책임한 세대라 하겠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영적인 삶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에도 무감각하여 이를 깨닫지 못함이요, 주위에 영혼이 죽어가며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데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니 무관심한 거다. 맡겨진 영혼, 맡겨진 자리에서 열매가 없으니 이는 무책임함이라 할까!

마태복음 11장 16~17절에서도 주님은 무감각하고, 무관심하며, 무책임한 세대들에 대해 이렇게 경고하신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바울은 우리가 땅의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존귀한 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영적 돼지처럼 땅만 보고 살아가지는 말고, 위엣 것을 바라보고 살자!

신현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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