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바리새인인가?
바리새인들의 본래 의미는 경건주의자들, 거룩하여 구분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영적으로 아주 좋은 의미를 갖고 출발한 사람들이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변질되어 바리새인이라 하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자들, 자기들만 옳은 줄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 말은 그럴듯한데 행함이 없는 자들이라는 의미로 전락했다.
예수께서 많은 자들을 교훈하시고 책망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격하게 책망한 부류가 바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다. 마태복음 23장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아’, ‘소경된 인도자들아’, 급기야
‘독사의 새끼들아’ 까지 격노하셨다.
‘외식’은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자신은 다 알면서 아닌 척, 그런 척, 있는 척, 아는 척 하는 것이고, ‘소경된 자들’이라는 말씀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볼 줄 모르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진짜 자신의 모습이 가련하고 불쌍한 모습인 줄 모르고,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던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살았다는 이름, 목사, 전도사, 사모, 장로, 권사, 집사라는 이름은 갖고 있으나 실상은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영혼인 줄 모르고 사는 사대 교인과 같은 사람들이다.
누가복음 13장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바리새인은 자신이 세리와 다르고, 자신이 의롭다고 감사하며 기도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 반대였다고 말씀하셨다.
목회 39년 차, 오랜 세월 하나님과 목사님 은혜로 목회자의 삶을 살아왔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리새화다. 나도 모르게 변질되어 가고 있거나 변질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잘 가고 있는 줄 착각하며 타성에 젖어서 살아가는 것 말이다. 성도들에게 ‘이것 하라, 저것 하지 말라’ 하면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아니면 심하게 망가져서 그런 감각조차 없이 살고 있지는 않은지, 심령의 감동과 감격은 사라지고 메마른 영혼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닌지, 늘 점검대상 1호다. 점검 결과 아니면 통회자복하고 통째로 갈아엎어야 한다. 임시처방으로는 어렵다. 문둥이는 깊이 찔려야 통증을 느낀다.
성전 안에 각색 우상으로 가득한 에스겔서 8장의 성전 모습을 시금석으로 삼아 내 영혼에 투영하여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 내 성전에 나도 모르는 우상이 자리 잡고 생각을 도둑맞고 있지는 않은지, 세월이 가면서 때가 끼어 있지는 않은지 진실하고 솔직하게 점검, 또 점검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육체는 노화되더라도 영혼은 날로 날로 새로워질 수 있다고 말씀 주신 주님께 감사,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할렐루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