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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나는 41년간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막16:1~20)

1345호 · 2026-02-15

모세는 40년간 율법을 전했습니다. 저는 41년간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세가 전한 율법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지켜야 옳은지를 가르쳤고, 그래서 그로 인해 죄가 드러나게 하는 거울이었다면, 복음은 죄인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사람을 정죄의 자리에 세우지만, 복음은 사람을 은혜의 자리로 부릅니다.

복음(福音)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복음이 무엇인지 이렇게 정의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4:18). 그렇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유케 되는 것이, 병든 자가 병에서 놓임을 받는 것이, 괴로운 자가 행복하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지옥에 갈 자가 천국에 간다는 것이 복음, 곧 복된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 복된 소식은 오직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세례 요한은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함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령세례 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

성령의 불이 임하면 권능을 받습니다(행1:8). 예수님도 성령을 받으신 후에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사복음서에 기록된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성령을 우리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이 임합니다(행2:38). 물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예수님에게 내린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고 회개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과 같은 성령을 받았으니 같은 권능이 나타난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그래서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막16:17~18). 만 원짜리 지폐를 아이가 내건, 어른이 내건 그 가치가 동일하지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집사들이 나가 예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제가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나라에 가든지, 누구 앞에서든지 당당히 예수님처럼, “나는 이 땅에 성령의 불을 던지러 왔다.”고 선포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원자임을 시인하게 하고, 회개케 한 다음 통성으로 기도하여 성령세례를 줍니다. 그러면 제가 할 일은 끝입니다. 그다음은 성령께서 다 하십니다. 이미 불이 붙었으니 성령이 역사하사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며,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벙어리가 말하며, 더러운 귀신이 떠나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자는 의사면허증을 받은 자입니다. 진료과목과 무관한 종합병원장이 되는 셈입니다. 여러분, 병 고치는 일은 예수님 당대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지금도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받은 것은 최첨단 무기를 지급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전쟁 중인 걸 아십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존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가난하게 만드는 영적 존재인 마귀와 귀신들과 전쟁 중입니다(엡6:12). 전쟁 중에는 무기가 승패의 관건이지요. 그것들은 미사일이나 핵으로 죽일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 강력한 예수 이름으로 쫓아야 하는데, 성령이 바로 그 예수 이름으로 오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성령 충만을 입는 것은 지뢰밭 같은 세상에서 지뢰탐지기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지뢰를 잘못 밟으면 지뢰가 터져서 순간 죽을 수 있고, 신체 일부분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뢰탐지기만 있다면 그것을 제거하면서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땅속에 숨어 있는 지뢰와 같은 귀신들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귀신들은 우리 삶을 순간 초토화시키려고 벼르고 있으나 성령충만을 입으면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기에 우리가 천국생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했고(살전5:19),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 귀신이냐? 왜 맨날 귀신을 쫓으라고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여러분, 도둑놈 이야기하면 누가 제일 싫어할까요? 도둑놈입니다. 간첩 이야기하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간첩이고요. 귀신 이야기하면 싫어하는 사람, 그 속에 귀신이 꽈리 틀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삶을 망가뜨리고,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고, 싸우게 하는 것은 다 귀신입니다. 그것들을 쫓아내면 우리 삶이 평안하고, 풍요롭고, 만사형통합니다.

제가 이걸 전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주님이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때 너를 보았노라.”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 주님 말씀에 나다니엘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에 만나 뵌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고 물으니 예수님이 이렇게 답하십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1:48).

그 예수님은 다니엘이 왕명을 어기며 기도할 때 보셨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을 때 보셨고,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칠 때 보셨고, 제가 핍박과 환난 중에도 목이 터져라 복음을 외쳤을 때 보셨습니다. 그래서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 같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눈을 지으신 이가 다 보고 계시고, 귀를 만드신 이가 다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시94:9).

여러분, 성령을 받았습니까? 로마서 8장 9절에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했고,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고, 갈라디아서 4장 6절에는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사람이요,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으로 확증되어야 자식만이 누리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주어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우리, 늘 성령충만하여 내 삶을 기름지게 하고, 또 이 성령을 힘입어 나가 복음을 전파하여 하늘나라가 확장되도록 합시다. 그것이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행1:8).

저는 41년 복음을 전했듯이 남은 생애도 복음 전파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주님이 이를 보고, “목이 터져라 날 증거할 때 그때 너를 보았노라.”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충만은

영적 무기의 총집결이다

성령을 주신 목적을 알아야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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