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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6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신학원 종강예배

1336호 · 2025-12-14
신앙논객

신학원 종강예배

지난 12월 5일, 예수중심제자신학원의 2025학년도 2학기 종강예배가 원장이신 이시대 목사님의 인도로 드려졌다. 특별히 이날은 목사님의 말씀에 앞서 생도 3명이 설교학 실습의 일환으로 모든 생도들 앞에서 위로와 권면, 교훈이 담긴 메시지를 전하여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첫 번째 주자였던 김정화 생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부르시고 택하셔서 모아주신 생도들의 앞길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격려하였다. 두 번째 주자로 나선 김혜리 생도는 현재 교육전도사로 시무하고 있는 경기교회가 새로운 성전으로 이전하게 된 에피소드를 나누면서, 하나님을 감동시켜 복 받은 많은 믿음의 선친들과 총회장 목사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간절히 찾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복과 사랑을 받아보자고 권면하였다. 마지막 세 번째 주자인 어선웅 생도는 ‘공든 탑도 관리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주제를 가지고 생도들로 하여금 사명을 받은 자로서 그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 생도들이 되자고 역설했다.

생도들의 설교를 들으신 이시대 목사님께서는 설교한 생도들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잡아 주시면서 한 학기 동안 학업과 봉사로 수고한 생도들의 노고를 치하하셨다.

“방학기간 동안 영·혼·육 간에 강건하십시오. 이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하십시오. 방학이라고 괜히 새로운 것이나 다른 것 좀 배워보겠다고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기웃기웃하면 다른 것이 우리 속에 들어와 변질되게 마련입니다. 성경이라는 한 우물을 깊이 파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육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어야 설교를 하든, 상담을 하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총회장 목사님의 메시지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우리 예수중심교단과 총회장 목사님의 명예가 걸려 있습니다. 예수중심교단의 제자들로서 그 정체성과 색깔을 확실히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4년제로 학제가 바뀌면서 1년 더 공부하게 되었음에도 순종함으로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 주어진 봉사에 최선을 다해주신 모든 교수진들과 생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신혁주 전도사

생명의 말씀

뱀의 머리를 잡아라!

모든 문제는 해석에서 시작한다. 해석 잘하고, 말 잘해야 한다. 총회장 목사님의 십팔번이다. 해석의 차이 때문에 방향성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뱀, 곧 마귀는 처음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집어넣었다. 곧바로 사람을 피해자로 인식시켰다. 그 부정 경험이 곧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타락)로 이어졌다. 인류뿐만 아니라 땅과 모든 만물에 그 죄의 결과가 확산되어 저주가 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로 물든 온 만물을 회복시키실 약속을 주신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다.

모든 것의 시작

(전제)이 중요하다. 뱀의 머리가 먼저 침투하는 순간 온 몸통이 자연스레 유입된다. 뱀의 머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 어느 공동체에서건 부정적인 생각과 말로, 순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영적 공기의 흐름을 전복시키는 자들이 꼭 있다.

그래서 신앙은 ‘전제의 싸움’이라 하지 않는가? 모든 일의 첫 순간부터 생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뱀의 머리부터 잡아야 한다. 해석과 용어에 대한 이해가 먼저 바뀌어야 방향이 전환된다. 가나안 땅을 점령했던 열 명의 정탐꾼이 뱀의 머리 역할을 했다. ‘메뚜기’라는 한 단어의 위력으로, 순간 온 백성에게 두려움의 영적 공기가 임해 밤새 통곡했다. 다시 ‘먹이’라는 한 단어로 분위기를 바꾼 두 명의 정탐꾼은 새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중세 암흑시대의 영적 혹사를 끊어낸 종교개혁은 용어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영적 싸움은 바로 ‘단어 싸움’이고 ‘용어 개혁’이었다. 해석 잘하고, 말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어를 바꿔버리니, 영적 해방이 임했고, 개신교가 탄생한 거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하는 것이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어 거룩하게 만드시는 축복의 여정을 주신 것이다!

우리 삶은 영적 전쟁이 일상이다. 날아가던 새가 머리 위에 똥을 싸고 지나갈 수는 있지만, 그 새가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는 못하게 막아야 한다. 늘 묵상하던 부정적인 생각은 말이라는 옷을 입고 불현듯 밖으로 외출하니 말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롬12:2). 우리가 늘 모든 일에 앞서서 뱀의 머리를 제압해야 하는 이유이다.

송직화 목사

치우치지 않는 저울

사랑이 사랑을 낳다

타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권사님이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수소문 끝에 장성 기도원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권사님께서 스스로 지교회를 찾아오셔서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권사님이 갑자기 아들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지셨습니다. 권사님은 총회장 목사님이 기도원에 오실 때마다 찾아가셨고, 목사님은 자식 잃은 권사님의 아픈 마음을 사랑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총회장 목사님께서 권사님의 담당 전도사인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권사님을 어머니처럼 잘 모셔라.” 어머니는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권사님을 어머니처럼 섬겼습니다. 더욱이 총회장 목사님께서 글로 다 쓸 수 없는 큰 사랑과 은혜를 어머니와 우리 가정에 베풀어주셨기에 어머니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은혜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권사님께 정성을 다했습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권사님의 아픈 사연을 다 들어드리고, 보듬고 기도하셨습니다. 권사님의 안색을 늘 살피고, 전화도 자주 드렸습니다. 예쁜 옷을 보면 권사님이 생각나 사서 입혀드리기도 하고, 기도원집회가 끝나고 가족이 함께 식사할 때면 권사님을 꼭 모시고 갔습니다. 날이 갈수록 권사님의 환해진 얼굴만큼 마음도 밝아졌습니다.

권사님도 어머니의 진심을 아시고, 어머니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살아갈 힘이 없었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머니를 딸처럼 사랑해주셨습니다. 부모님이 전도하러 나가실 때마다 권사님께서 늘 함께하셨고,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실 때면 우리 가정을 향한 기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가정의 기쁨에 함께 기뻐해주시고, 어려움에도 함께 기도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권사님께 드린 사랑보다 받은 사랑이 더 크다고 늘 말씀하십니다.

지난 교회신문(1330호/2025.11.2)에 간증했던 것처럼, 부모님이 장애인 두 분을 집으로 모셔와 보살피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전도사 사역을 하는 동안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권사님께서 그분들을 기꺼이 돌봐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응급실에 실려가 입원했을 때도 권사님이 달려와 간병해주셨고, 그분들이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아 애타게 찾아다닐 때도 권사님은 함께하셨습니다.

장애인 한 분이 암에서 완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분이 암에 걸려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부모님과 권사님은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권사님께서 천만 원을 수술비로 선뜻 내놓으셨습니다. 82세의 권사님에겐 매우 큰 돈이었지만, 권사님은 돈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귀하다고 하시면서 오로지 암에 걸린 그가 살아나기만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된 기도에 응답하셔서 의사의 손길을 통해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가 속한 지교회에서 금요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권사님께서 자식과도 같은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장애를 가진 그의 느린 발걸음에 맞추어 담임목사님께 다가가 안수받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총회장 목사님을 품으셨고,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목사님의 사랑이 어머니와 우리 가정에 흘러왔으며, 그 사랑이 권사님에게 전해져, 또 다른 사랑을 낳았습니다.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 발걸음 닿는 곳마다 예수님과 목사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삶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1~12).

정명관

신앙에세이

동전의 양면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 면이 위를 보고 있으면 그 동전은 숫자밖에 안 보이고, 형상 면이 위를 보고 있으면 동일한 동전임에도 형상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이고, 불행한 사람은 모든 것이 불행해 보이는 것처럼.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복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 행복한 순간이 있는 것이고, 불행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 불행한 순간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행복의 면과 불행의 면이 시시때때로 변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서든, 마귀에 의해서든, 나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서든, 삶의 동전은 계속 튕겨진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이 같은 사람임에도 비극이 되기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키우며 얻는 기쁨과 감격, 그리고 행복만큼, 삶의 무게와 인내심의 한계, 그리고 부족한 부모로서의 자책도 있다.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이 때로는 마음의 시험과 사람에 대한 실망, 또는 원하는 기도 응답이 오지 않아 낙심되기도 한다. 하나님도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신 후 심히 기뻐하셨지만, 창조물 중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사람, 그 사람을 땅 위에 만드신 것을 한탄하셨다.

지금 내 삶의 동전은 어느 면이 위를 보고 있을까? 행복과 평안의 면이라면 하나님 안에서 그것들을 누리며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면 된다. 고난과 고통의 면이 위를 보고 있다면 그 삶의 동전이 다시 튕겨져 뒤집힐 때까지 바짝 엎드려 버텨야 한다. 삶의 동전은 계속 튕겨지고, 어떤 면이 나오든 우리는 하늘만 바라보면 된다. 다른 이의 동전이 아닌 하늘을.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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