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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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9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위기 대처법

1329호 · 2025-10-26
깊은 곳에서의 울림

위기 대처법

어느 날, 식품 창고에서 일하던 한 남자가 점검 중 실수로 냉동고 안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살려 달라!” 외쳐도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너무 춥다. 나는 이제 곧 얼어 죽을 거야. 이대로 죽고 말겠지….’ 그는 같은 말을 되뇌며 절망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불현듯, 그의 마음속에 ‘기도하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생각을 바꾸고 외쳤습니다. “아니야!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주실 거야!”

그는 눈을 감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경비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한밤중에 순찰을 돌게 하셨습니다. 냉동 창고 안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경비는 문을 열었고, 남자는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그를 살린 것은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은 ‘기도의 위력’이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라고 총회장 목사님께 말씀드렸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호통을 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썩은 생각을 바꿔라! 왜 시작도 하기 전에 부담이 된다 하느냐? 네가 부담이 된다 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절대 부담이 된다고 말하지 말라. 네 생각과 말이 곧 결과다! 매사에 ‘나는 자신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기도해라! 왜 안 되겠느냐!”

상대를 위로한다는 이유로 ‘나도 그래’라며 부정의 말에 동의했던 나. 눈앞의 현실을 믿음이 아닌 두려움으로 바라보며, 부정의 말을 내뱉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부담된다’라는 말조차 허락하지 않으시는 목사님.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을 말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으시는 그분을 통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결국 내 생각과 말에 달려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깊이 깨달았습니다.

지금 사면초가에 놓여 있습니까?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방이 막힌 것 같아도, 하늘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김진실 사모

영생에 이르는 길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냥이 끝나면 사냥하던 개를 삶는다는 뜻으로, 중국 한나라의 명장 한신이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으나 천하를 평정한 후 유방에게 숙청당한 사건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입니다. 필요할 때 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세상 풍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십자가의 고난을 목전에 두었기에 참담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부르짖으셨던 주님. 그 애통함에는 목숨보다 사랑하던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홀로 남겨지는 고독과 설움도 함께 배어있었습니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얼마나 고독했을까?’ 예수님이 받은 상처와 배신감은 십자가 형벌만큼이나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찾아가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가장 귀한 양무리를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필요할 때는 잘해주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기 일쑤입니다. 또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은 짧으며, 원망은 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셨고, 버림받았어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예수님처럼 기도합니다. 그래서 악을 선으로 이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아주 간절히 소망합니다.

최성경 전도사

생명의 말씀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져야 한다

우리 인생은 편도 여정이다.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이 말씀은 단순히 나이 계산을 잘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 인생이 얼마나 짧고 유한한지 깨닫고, 살아 있는 동안 어느 시점에서든 멈추어 서서 내 삶을 재점검하며 하나님께 남은 시간을 지혜롭게 드리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축구에서 전반전이 끝나면 15분간의 하프타임(Half-time)이 주어진다. 선수들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함께 전반전을 되짚어보고 실수, 약점을 점검하며 후반전의 전략을 새로 세운다. 하프타임을 잘 활용하는 팀이 후반전에 승리를 거둔다.

우리도 한 번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앞으로 남은 시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그 질문이 바로 하프타임이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며 인생의 궤도를 바꾸었다. 그 순간이 그의 하프타임이었다.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삶의 목표와 정체성이 바뀌었다. 다윗도 밧세바 사건 이후 선지자 나단을 통해 책망받고, 철저히 회개하며 삶을 재정비했다(시51편). 또한 사울이 바울이 되기 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삶의 진로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것이 그들의 하프타임이었다. 이처럼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어느 순간 인생의 하프타임을 경험하면서 전혀 다른 후반전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져야 한다. 현대인들은 수명이 늘어났다. 아무리 수명이 늘어나도 방향 없이 사는 삶은 공허하다. 많은 사람들이 60이 넘도록 한 번도 멈추어 자기 인생을 돌아보지 않고, 단지 성공, 돈, 명예만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다 후회하며 ‘왜 나는 궤도를 수정하지 않았을까?’ 탄식한다.

그래서 하프타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나온 삶을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서 남은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이다. 모세의 기도처럼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간구하면서.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로잡는다면 후반전은 전혀 다르게 펼쳐질 수 있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바로 지금일 수 있다.

임택함 목사

참된 깨달음

예수 외에 자랑할 게 없다

저는 미국 주식투자를 약 7년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나스닥 ETF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유망한 투자처라고 믿었기에 꾸준히 투자했고, 그 덕분에 괜찮은 수익을 얻었습니다. 수익을 얻으니 확신이 생겼고, 대출금까지 무리하게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상승할 것만 같았던 미국 주식 시장은 2022년, 역사적인 급락을 맞았습니다. 1년 내내 이어진 하락장에서 저 역시 투자금의 80%에 가까운 손실을 보았습니다. 낙심하며 기도하던 중, 과거 동료들에게 투자를 권유하며 수익을 자랑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자랑하지 않고, 미국 주식 투자가 엄청난 성공 방법인 양 동료들에게 자랑하던 부끄러운 모습을 투자가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고백하며 예수님만을 자랑했습니다. 우리 목사님도 많은 재산을 팔아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이적을 나타내셨지만, 자신은 그저 예수님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자랑하고 있나요? 세상에서 조그만 지위를 얻고, 부를 쌓고, 명예를 얻었을 때 그것을 자랑하고 있지는 않나요?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이 위기를 통해 저를 깨닫게 하셨고, 잃었던 손실 또한 점차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의 헛된 자랑보다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이 주시는 평화와 소망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송명국 집사

Good News

우리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세월이 신속히 지나가는데 날아가듯이 지나간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하였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다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시종을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노후를 준비하는 일보다 사후를 준비하는 일이 더 소중하고 지혜로운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은 영원합니다.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길어야 100년입니다. 그러나 죽은 뒤의 세상은 영원합니다. 유비무환이라고 미리 준비한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후를 준비하지 못했다가 갑자기 죽게 되면 심판대 앞에서 땅을 치며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한 점 후회함이 없도록 노후보다 사후를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죽은 뒤에 영원한 세상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복락의 천국이요,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의 지옥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천국과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구원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엄청난 선물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상화평 목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용서해야 삽니다

지난달, 미국에서 서른한 살 청년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아내는 장례식에서 남편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다고 말합니다. 복음이 알려주는 증오에 대한 답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증오를 이기는 사랑,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옵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기도문을 통해 용서의 중요성을 봅니다. 그러나 정작 남의 작은 잘못도 쉽게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같은 크리스천일 경우 용납하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의 형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을요. 형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형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동생을 기꺼이 포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도 이와 같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화목하고 사랑하길 원하시는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했습니다.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한 마음은 쓴 뿌리가 됩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마귀가 쉽게 틈타는 통로가 되고 결국 자신을 병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명하신 것은 나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하고 살리려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다시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평안, 기쁨을 온전히 누리길 소망합니다!

전소희

신앙에세이

시도하지 않으면

학창 시절, 연예인을 꿈꿔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길거리 캐스팅도 많아 ‘누군가 데려가 주겠지’, 은근슬쩍 기대도 하였는데, 기대만 하다 끝났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이후 아홉 살 어린 동생도 그러한 꿈을 꾸길래, ‘여러 기획사 오디션을 보며 시도해봐라’ 조언해주고, 같이 따라가도 주었다. 지금은 그 꿈을 이룬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첫째 아들이 한 친구를 전도하여 몇 차례 중고등부 예배에 데려갔다. 그 친구 아빠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못마땅했는지 중고등부 예배처에 찾아가 소위 깽판을 치고 갔단다. 다행히 현장에 아이들은 없고, 중고등부 목사님과 두 명의 교사만 있어 면담 후 돌아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괜히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 아이가 전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생각하며, 그 친구 가정이 하나님의 관심 속에 들어간 것을 감사하며 기도해주었다.

작년부터 청장년부 한 집사님의 추천으로 미국 주식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추천해준 책을 보고 따라하며 시도해보고, 또 공부도 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주식 재테크를 하였다. 작년에 어느 정도 수익이 발생하였고, 올해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보았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작년에 평소처럼 아무런 재테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수익도 결과도 없었겠구나.’

도전하고 시도해야 꿈도 이루어진다. 전도도 해야 마귀의 발악이든, 하나님의 기적이든 나타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눅19:23).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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