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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수련회

1320호 · 2025-08-24
낮은 울타리

전대미문의 수련회

올해 교단 표어처럼 이번 대학청년 수련회는 전대미문의 수련회였습니다. 기도원 시설부터 제공되는 식사까지 전보다 훨씬 발전되어 수련생들이 말씀과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특히나 총회장 목사님은 세 번이나 말씀을 전해주시며 청년인 우리들 마음에 불씨를 심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수련회는 제 삶에 전대미문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일단 수련회 전 주일예배 때 보여주셨던 수련회 홍보영상을 보면서 ‘내가 저 때 저 말씀을 실천했더라면 지금 나의 인생이 바뀌지 않았을까’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이번 수련회에서는 목사님의 말씀을 무조건 듣고 실천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기도하고, 부지런하고, 내가 목표한 것에 집중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제가 적용할 수 있고, 당장 서울에 돌아가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노트를 하나 만들어 수련회 때 깨달은 말씀과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수련회 이후 매일 아침 제가 실천할 목록들을 읽어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실천할지 계획을 짜고 그 과정을 적고 있습니다.

수련회가 끝나고 몇 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 시간 동안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제가 쓰는 언어를 바꾸고, 부지런하게 살기 위해 저의 환경을 바꾸었습니다. 선택의 기로 앞에 고민 많고 막막했던 저의 미래를 향해 ‘부지런하면 미래가 보인다.’고 외치신 목사님의 말씀 따라 열심히 살기 위해 일단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삶을 대하는 저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처럼 작품이 될 저의 인생을 상상하고 하나님 안에서 기적을 맛볼 저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 올해 수련회 때의 영상을 우리에게 다시 보여 주신다면, 그때는 ‘내가 저 설교 듣고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지’ 하며 후회하는 제가 아닌 총회장 목사님 설교의 열매가 되어있는 저를 바라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육부 수련회도, 산상 집회도 끝이 났습니다. 이제 들은 설교를 실천할 우리들만 남았습니다. 전대미문의 삶을 만들어갈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장수정

동행하는 삶

기도원, 우리 가족의 은혜 충전소

올해도 어김없이 영혼의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휴가를 내고 기도원으로 향했다. 출발 전부터 기대와 설렘이 있었지만, 큰 은혜가 임하기 전에는 반드시 악한 영들의 공격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편으로는 긴장도 되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기 전부터 몇 번의 고비가 있었고, 내려가는 길에도 여러 일들이 있어 기도원에 도착하니 심적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결국 남편에게 순간적으로 “나, 내년에는 기도원 안 와!”라며 감정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것이 마귀의 계략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나약하게도 느껴졌다.

불편한 마음으로 참석한 그날 저녁집회에서 나는 눈물로 회개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 마음 아시죠?” 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은혜의 말씀을 듣고, 풍성히 차려진 뷔페 식사를 누리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새 마음속에 근심은 사라지고 감사가 넘쳐흘렀다. 청장년부팀에 속한 한 집사님은 자신의 남편이 성령세례 받는 것을 간절히 소망했는데, 그 집사님의 기도가 이루어져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졌다. 같이 기도원에 간 지체들과 나누는 은혜의 이야기들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누리는 모든 은혜의 시간은 진정한 휴가가 되었다.

또 우리 아이들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평소 짜증이 많던 초등학교 1학년 둘째 아이는 기도원 생활 내내 짜증 없이, 오히려 긍정의 아이콘으로 변화되어 엄마 아빠에게 좋은 말만 하며 힘을 주었다. 스마트폰으로 미디어를 접하며 시간을 때우는 대신, 예배 시간에 부모 옆에 앉아 손으로는 종이접기를 하고, 귀로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어서인지 생활 속 말과 행동이 한 마리의 순한 어린 양처럼, 천사처럼 변했다. 기도원에서 올라오자마자 아이는 여름성경캠프에도 다녀와서 우리 부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가족끼리 손을 잡고 기도할 때마다 둘째 아이는 늘 팔을 엑스(X)자로 교차하여 손을 잡고는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장난을 쳐서 매번 주의를 받았다. 그런데 수련회와 캠프를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족이 다 같이 기도할 때는 바른 자세로 손을 잡고, 무릎을 꿇고, 꼭 감은 눈으로 ‘아멘, 아멘’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감동하면서도 ‘아, 이 작은 아이의 신앙도 성장했구나.’ 느꼈다. 게다가 첫째 아이도 기도원으로 중고등부 수련회를 다녀와서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성령 충만함과 은혜를 받았다며 밝은 얼굴로 말하였다. 더욱이 새 방언도 받았다고 좋아하며 기뻐했는데, 아이의 기쁨의 고백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울렸다.

예전에 기도원에 다녀온 후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구식 수동 총으로 귀신을 쫓던 내가 신식 레이저 총으로 귀신을 모두 무찌르는 꿈이었다. 그때 ‘기도원에 다녀오면 성령 충만하여 내가 총만 들고 있어도 귀신들이 다 떠나가는구나! 역시 기도원은 나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느꼈었다. 이번에도 ‘역시, 틀림이 없구나!’ 생각했다.

뜨거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곳, 신앙의 감격을 느낄 수 있는 곳, 성령이 충만해지는 곳,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 만날 수 있는 곳, 우리 가족의 은혜 충전소, 그곳은 바로 기도원이다.

정효경 집사
한국교회사

1903년 원산 대각성 회개 부흥

하디 선교사는 1901년부터 원산과 강원도 통천 지방에서 개척선교사로 3년간 선교활동을 했지만 별로 결실이 없었다. 그는 청일전쟁의 와중에서 절호의 선교 기회를 잡았음에도 결실이 없자 낙망하고 심한 패배감에 빠져있었다. 최선을 다해 의술을 베풀며 복음을 전했지만, 그가 기대했던 것만큼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기도하며 원산지역의 교회들을 순회하던 하디의 마음을 찢은 것은 조선 기독교인의 영적 무지함에 있었다. 교인들은 주일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았으며 성적으로도 방종했다. 공금을 횡령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심지어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에서 무당굿을 하려고까지 했다. 하디는 이런 이들에게 성찬을 금하고 교적부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하디 선교사는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조선 교인들에게서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보기 원했지만 ‘분명하고 지속적인 회개의 구체적인 예’를 찾을 수 없었다. 하디는 그때를 기록으로 남겼다. “마치 악령의 세력들이 연합하여 공격해오는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확신도 파괴하려고 덤벼들었다. 내가 노력하고 애쓰는 만큼 나의 사역에 결과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점점 더 뚜렷한 영적인 능력의 결핍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중국 의화단 사건을 피해 1903년 원산으로 피신해 온 여선교사 화이트와 캐나다 장로회 출신 여 선교사 맥컬리는 한국인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회를 시작했다. 원산의 여선교사들 수련회에서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준비하던 하디는 자신이 말씀과 깊이 만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 그리고 기도회를 인도하는 내내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통회했다.

하디 선교사가 수없이 ‘회개하라’고 할 땐 아무런 반응이 없던 교인들이 울며 회개하자 하디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조선인을 미개한 민족으로 생각하고 거만하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자신을 회개했다. 하디는 일주일간 부흥집회를 인도하며 백인 우월의식, 의사 신분적 거만함, 무지한 조선 사람들과 교인들을 무시했던 것, 자신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자랑과 교만함, 그리고 성령 충만 없는 사역을 통회하였고, 성령의 도우심보다 자기 실력에 대한 과신을 참회한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선교사들과 교인들도 함께 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또한 함께 참석했던 조선 사람들도 회개의 방법을 알게 되어 모두가 함께 자복하였다.

한 선교사의 진심 어린 회개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전염병처럼 다른 이들의 회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회개는 바보스러울 만큼 철저하고 구체적이었다. 하디 선교사와 함께 전도하던 윤승근은 전도하다가 빼돌린 돈이 7달러(7,000원)에 달한다고 고백하고 이 돈을 돌려주었다. 그는 예수를 믿기 전 횡령한 돈 20원을 돌려주려고 근무하던 회사에 갔으나 회사가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하고 재정을 관리하는 정부 기구에 사정을 말하고 돈을 건넸다.

그때 부흥운동 기간에는 과거에 횡령하거나 훔친 돈을 돌려주는 초대교회와 같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잇달았다. 돌려줄 대상이 없어진 경우에는 교회에 바칠 정도였다. 이러한 양심전(錢)이 교회에 수북이 쌓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부흥의 시작이다. 회개가 있는 곳에는 틀림없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오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회개하는 자들이 모인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회개가 있은 다음 날, 사람들이 거리에서 서로 죄를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도둑맞은 물건들이 되돌아오고, 잃어버린 돈도 돌아오고, 오랫동안 갚지 않았던 빚이 청산되었으며, 부정한 방법들이 바로 잡혔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부흥회에 임한 것이다. 이것이 원산 대각성 회개운동이다.

하디는 의료 사역보다 목회를 선호하였고, 특히 강력한 설교자가 되기를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자복하는 회개의 방법을 통해 그를 부흥사로 만드신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기도하는 하디에게 자신도 모르는 방법으로 응답하셨다.

1903년 원산 부흥운동의 시작은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졌고, 당시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이 하디를 초청해 연합 사경회를 개최하였다.

하디는 자신의 깊은 영적 체험을 간증하고 회개운동을 촉구함으로 집회마다 말씀에 대한 사모, 은혜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 참석한 이들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디 선교사는 한국 교회사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 중심인물이 되었다.

김종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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