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힘
반복의 힘
어느 동네에 힘겨루기 시합이 있었다.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쌀 한 말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점 무게를 늘려가는 방식이었다. 팔뚝이 나무통만한 사람들이 번쩍번쩍 쌀부대를 들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낙오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한 가마에서 두 가마니가 되었을 때는 겨우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은 누가 봐도 우승 후보처럼 보였으나 한 사람은 저기서 무슨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허약해 보이는 자가 결승에 올라와 있었다.
드디어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말 예상외로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승리했다. 우승자가 말했다. “나는 매일 쌀을 나르는 사람입니다. 하루아침에 쌀 한 가마를 든 것이 아니라 차츰 무게를 늘려가면서 꾸준히 일했기 때문에 오늘의 시합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맞다. 매일 힘을 쓰는 자는 힘이 나오게 되어 있다. 체격이 좋다고 해도 힘을 써보지 않으면 적은 일에도 무리가 온다. 이는 마치 엄마들이 제법 큰아이들을 안거나 업는데 전혀 무리가 없는 것과 같다. 매일 아이를 안았기 때문에 너끈히 안을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달리는 자가 마라톤을 완주하듯이, 매일 노력하고, 노력하는 자가 진일보할 수 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탁월한 두뇌를 소유하고 있다 해도 매일의 노력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매일 반복적으로 노력하는 자가 돼라. 오늘 노력한 만큼 성장의 폭이 넓혀진 것이니, 매일 당신을 채찍질하라. 성공의 그 날까지.
이초석 목사 저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에서
창조주가 지은 것
얼마 전 제가 사는 아파트 전체에 전기 점검으로 인해 정전이 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는 사람이 만든 거라 자연재해나 시스템 오류로 쉽게 끊길 수 있구나.’
똑같이 빛을 내지만 절대 끊기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해와 달입니다. 낮에 비치는 해도, 밤에 비치는 달도 사라지거나 빛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을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실 해와 달을 만드신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은 아주 귀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하시고(요1:12), 세상의 빛과 소금(마5:13~16)으로 만드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승리한 자라고 하시며(요16:3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능력(마9:23)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해가 절대 빛을 잃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있는 한, 우리에게 주신 권세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권세를 잃은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의심하고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이 그 빛을 잃지 않지만, 커튼을 쳐놓으면 그것이 차단되듯 말입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늘 ‘우리는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 야성을 잃은 호랑이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살다 보면 이 사실을 너무 쉽게 놓치고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이기는 존재로, 세상을 비추는 존재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작아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낙심하며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해가 빛을 잃지 않는 것은 믿으면서 왜 우리가 그런 존재라는 것은 믿지 못할까요? 해를 지으신 것도 하나님이고, 우리를 지으신 것도 하나님이며, 하물며 저희를 가장 귀하게 지으셨는데 말입니다. 잊지 맙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최고의 작품입니다.
장수정
일단 하자! Just do it!
성경 통독은 나에게 숙제같이 느껴졌다. 매년 초 성경 일독을 목표로 세우고 작정하는 나에게 남편은 작정하지 말고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해주었지만 사실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청장년부 팀원들과 함께 성경 통독을 시작하였는데, 1년 3개월 만에 마침내 성공했다. 혼자서 하다 보면 흐지부지되곤 했는데 팀원들과 마음을 모으고 함께 읽어가니 어느덧 성경 통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생각만 하고 목표만 세웠으면 안 됐을 텐데, ‘우리 성경 통독하자’ 하고 마음먹은 것을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서로 독려하니 완독하게 된 것이다.
전도를 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일 중의 하나였다. 수영 강습을 다니며 알게 된 언니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언니가 3년 전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중환자실에 한 달 넘게 입원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죽을뻔했는데 살아서 기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전도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강습 후 샤워 중이라 분위기도 그렇고 사람도 많고 해서 나중에 해야 하나 고민만 하다가 ‘아차 이러다가는 절대 못하겠다’ 싶어 “언니, 교회 다녀요?” 하고 물어보니 무교라고 했다. 그래서 “언니, 예수님 믿어요.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어요. 예수님 믿어야 천국 가요.” 하고 용기 내서 일단 전하고 봤다. 그러자 본인도 교통사고가 난 후 ‘예수님을 믿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남편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교회는 내가 갈 곳이 아닌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언니를 위해 기도할게요!” 하고 말하니 “응, 기도해 줘! 나 기도해 줘!”하며 적극적으로 기도를 요청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고, 일상에서도 전도하라는 총회장 목사님 말씀 따라 그 후로도 카카오톡으로 전도를 시도하는데 생각보다 상대방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싫어할 거야, 부담 주지 말아야지’ 하던 내 생각과 핑계를 접고 틈나는 대로 복음 전파에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대미문의 축복도 받으려는 행동을 일단은 해야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대미문의 축복을 주시려고, 가득 부어주시려고 ‘요이땅!’ 준비하고 계시는데, 가만히 있으면 받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을 준비를 하고 일단 뭐든지 해야, 발을 떼고 움직여야 응답이 오든, 축복이 오든 하겠다고 생각했다. 기회도 움직여야 보이고 해봐야 내 것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방언 기도하고, 수시로 귀신 쫓고, 수시로 공부하고, 수시로 전도하여 우리 삶의 열매가 풍성해지기를 소망한다.
일단 하자! ‘Just do it!’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다 간 사람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의 각각 그 죽음의 의미가 다릅니다. 불신자가 죽게 되면 사망하셨다고 하는데, 그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죽을 사(死)에 망할 망(亡)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돌아가신 분에게는 사망이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천하셨다고 하는데 부를 소(召)에 하늘 천(天)을 사용해서 ‘하늘에서 불러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우매한 자들은 ‘죽으면 그만’이라고 하는데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천국으로 가게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영벌의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지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믿음을 준비하여 천국에는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이 두렵고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주님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죽는 날이 그토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시간이기에 복되고 기쁜 날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죽음을 통해 영혼의 때를 맞이하여 참된 안식이 있는 더 나은 본향으로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믿음으로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상화평 목사
a26881009@gmail.com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는 이유
기도는 신앙생활의 필수요소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기도를 마지막 유언으로 삼을 만큼 그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수많은 설교를 통해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성경을 통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이유는 기도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간단명료한 말씀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무엇이든 구해야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다 아시고 머리카락까지 헤아리시는 분이지만,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구해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마주했을 때 그가 소경임을 아시고도,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가 ‘보기를 원한다’고 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구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그의 삶에 일어났습니다.
한 청년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형편이 여의찮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업을 이어 나갔고, 부모님도 힘닿는 대로 뒷바라지해주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날도 아들을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아들을 네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느냐? 내게 맡겨라.”
그 후로 부모님은 아들에게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느 겨울날 아들이 부모님을 찾아뵀고, 부모님은 아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근데 어머니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들이 입고 온 얇은 여름 양복이었습니다. 마음이 몹시 아팠던 어머니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고 하셨으면서 왜 우리 아들이 추운 겨울날 얇은 여름 양복을 입고 다니게 하시나요?” 그때 어머니에게 또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아들이 나에게 구하지 않았다.”
야고보서 4장 2절에는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에스겔 36장에는 무너졌던 이스라엘 땅이 다시 회복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7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사실도 우리가 기도해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조목조목 필요한 것들을 구해봅시다. 하나님은 우는 자녀에게 먼저 젖을 물려주실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이호민 전도사
fioe15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