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시했다고 해!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교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결재한다.
지난주에도 신문을 읽는데, 어느 주의 종의 글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의 종이 다룰 분야가 아닌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 편집장에 전화를 걸어, “필자에게 전화해서 이 글을 바꾸라고 해라. 목사는 간증을 통해 믿음을 가르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전해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네가 편집국장이야. 상대가 목사라고 해도 당당하게 할 말은 해야 한다. 그에게 ‘총회장 목사님의 지시입니다’라고 말하면 된다.”라고 말했고, 편집국장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 편집국장이 전도사 신분이기에 목사에게 지시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지시한 것이기에, 뒤에 내가 있기에 편집국장이 당당히 목사에게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귀신을 쫓고, 병든 자를 안수할 때가 이와 같다. 내 힘으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못한다. 그러나 뒤에 하나님이 계시니, 그분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가능한 것이다.
목회 초 부천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내게 ‘야! 너는 못 쫓아.’ 그러는 거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 입술을 주장하셨다. “그래, 난 못 쫓아. 근데 너 예수 알아?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 그랬더니 귀신이 나가고 그 사람이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주의 종들이 왜 귀신을 못 쫓는지 아는가? 두려워서다. ‘귀신이 안 나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서다. 그러나 자고로 명령권자가 책임도 지는 법 아닌가. 예수 이름으로 명했으니 명령권자인 예수님이 다 책임지신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우리는 그 명령대로 집행만 하면 된다. 편집국장이 책임질 일이 없다. 그냥 내가 시킨 대로 일을 진행하면 된다. 우리 교회 주의 종들은 그럴 일이 없지만, 만일 상대가 ‘감히 전도사가 목사에게 이래라저래라해?’ 한다면, 편집국장이 내게 이르면 내가 해결할 것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담대하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라.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