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생각을 바꾼 사람들을 보라(민14:11~20)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는데, 왜 네가 안 된다 하느냐? 할 수 없다, 안 된다 하는 것은 불순종이 아닌가.’
제가 쓴 잠언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하는데 내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불순종이요, 죄입니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12지파의 족장을 택하여 가나안을 정탐하고 오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12명의 족장을 가나안에 보냈는데, 그들이 다녀와서 하는 말이 둘로 갈렸습니다. 10명의 족장은 “그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장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민13:32~33)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땅에 못 들어간다,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런데 10명의 족장은 ‘못 간다’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자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아말렉의 모든 것을 죽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사울이 불순종하자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15:23)고 했습니다. 불순종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며 죄를 짓고, 불평과 원망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는 참지 못하시고 다 쓸어버리라(민14:11~12)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감히 하나님 앞에 아룁니다. “지금 이 백성을 다 죽이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어서 광야에서 죽였다 할 것이니 마음을 바꿔주십시오.”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에,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민14:20)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된다’고 하셨는데, 자신들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반대로 하나님이 ‘안 된다’ 하셨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어 ‘되게’ 했습니다. 출애굽기에도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진멸하려고 할 때 모세는 간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돌렸습니다(출32:12~13).
그런 인물은 또 있습니다. 한나입니다. 한나는 무자(無子)했습니다. 이유인즉 하나님이 태의 문을 닫으셨기 때문입니다(삼상1:6). 그런데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사 한나에게 자녀를 주십니다. 그것도 세상에 둘도 없는 근사하고 의로운 아들, 사무엘을 주십니다.
또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20:1)고 말합니다.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히스기야는 그 즉시 면벽하고 심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사 그를 낫게 하셨고, 증거까지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 당신이 하신 말씀에 후회가 없으시고, 변개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하셨고,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말3:6)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도 바꾸십디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개함이 없는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게 했을까요? 바로 기도, 애통하는 기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목을 내놓고 기도했습니다.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32:32) 하는 심정으로 모세는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나가 자식을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그의 원통함과 격동함이 얼마나 컸던지 성경에는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1:10)라고 했고, 이를 지켜보던 엘리 제사장이 그녀가 술에 취한 줄 알 정도였습니다. 그런 한나의 기도에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사 태의 문을 여시고 사무엘을 비롯한 일곱 자녀를 주신 것입니다. 히스기야요?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사망 선고를 받은 그는,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사38:14) 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사야가 아직 궁정을 떠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왕하20:5).
그렇다면 그때 그 시절에만 하나님의 마음을 바꾼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있습니다. 의사인 우리 성도가 코로나로 인해 중환자실에 입원했었습니다. 담당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장례 치를 준비를 하라고 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 교역자에게 합심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기도 중에 이시대 목사가 환상을 봤답니다. 이 성도가 죽어 천국에 갔는데, 예수님이, “밑을 봐라. 너를 살려달라고 종들이 저렇게 기도하니 다시 돌아가거라.” 하셨답니다. 그 성도는 당연히 살아났지요.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또 장로님 한 분도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맸는데, 성도들의 합심기도로 하나님이 살려주신 일이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마음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마음도 바꿔주십니다. 88년도에 펄시 콜레 박사를 모시고 기도원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집회를 하는데 그들이 제가 잘못되었다며 저를 배제하고는 다른 목사를 초빙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억울해서, “하나님, 저 이 집회 안 하렵니다.” 하며 통곡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제 마음을 바꿔주시며 계속 집회를 하라 하셨고,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28~32)는 말씀으로 저를 붙들어주셨습니다. 또 무지개가 태양을 감싸고, 대성전 앞에 예수님이 서 계시는 것을 보여주시며, 많은 병자들이 줄줄이 나아와 고침을 받는 성령의 역사로 위로하셨습니다.
과부의 간청에 콧방귀를 뀌던 재판관도 결국 과부의 간청에 마음을 돌이킨 사건을 아시지요(눅18:1~5)?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마음도 돌리는데, 사람 마음이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한은택 목사가 비자가 나오지 않자 미국대사관을 여리고 돌 듯 일곱 바퀴 이레를 돌고 기도했더니, 비자를 안 내주던 그들이 10년짜리 비자를 내주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위력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면 안 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일이 안 됩니까? 일이 꼬입니까? 아픕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간절히 구해보세요. 그녀가 딸을 고쳐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도 버리고 간구하니 예수님이 마음을 바꾸사 결국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것이 믿음이라 칭찬까지 하셨습니다. 결론이 났습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고, 대충 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셔야 할 것은 내 생각이 바뀌어야 하나님의 생각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한나가 그냥 남편 엘가나의 위로로 만족하고 살았더라면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한나가 ‘나도 자식을 갖고야 말겠다’고 작정하고 기도하니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히스기야도 ‘지금 죽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선한 옛일을 들추며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생각을 바꾸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는데, 그 열쇠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순서에 입각합니다. 하늘에서 먼저 매고 푸는 것이 아니고, 땅에서, 곧 내가 먼저 매고 푸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비를 내리고 말겠다 하니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사 비를 내리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한 것도 되게 한 사람은 누구고, 우리는 누구입니까? 그들과 우리가 다른 성정입니까? 우리, 부정적인 생각, 썩은 생각을 잘라내고 간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기도해봅시다. 기도의 임계점을 넘어봅시다. 반드시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할렐루야!
절박한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도 바꾼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