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목회자 영성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인의 아내였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이초석 목사를 찾아가라’는 꿈을 꿨다며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지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분재 전문가였다. 그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분재를 여러 점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많은 분재를 남기고. 나는 세미나를 마친 주말에 그의 집에 들러 유족들을 위로하고, 차후의 일 처리에 대해 조언을 해줬다.
나는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만난 사람, 내일 본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 떠올라서 그러기도 했지만, 돌아간 그를 생각하면 한없이 안타까워서였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목사였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목사가 주의 일을 해야지, 분재나 하고 있으면 되나.”라고 충고했고, 그는
‘조금 있다가 하겠다’는 말로 내 입을 막곤 했다. 그런 그가 불현듯 갔다. 그가 남긴 많은 분재들, 그건 이제 이리 떼처럼 달려드는 이 땅에 남은 사람들 몫일 뿐, 그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내놓을까.
나는 이번 세미나 때 ‘우리 이 땅에 몸으로 태어나 무슨 일 하다가 무엇을 남기랴~ 우리 무엇으로 주님께 드리랴’라는 찬송만 불렀다. 사랑하는 내 제자들이 언제 부름을 받아도 당당히 주님 앞에 내놓을 작품을 준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수의에 왜 주머니가 없을까? 세상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지인이 그 값진 분재 하나 못 가지고 다 놓고 간 것처럼.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할 것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는 세상에서 최고의 분재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영원한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빈손이니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민도 빈손이면 안 받아준다는데….
우리, 주 앞에 내놓을 작품을 만들자. ‘이겁니다, 주님’ 할 수 있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만들어보자.
그래서 나는 그 작품을 위해 또 지구 반대편인 멕시코 살티요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