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라
2004 멕시코 쌀띠요 집회 광경
우리가 예배 끝에 자주 부르는 찬양이 있다. ‘나는 가리라’.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왜? ‘이 길은 영광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며,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하여 비록 그 길은 고난의 길이겠지만 생명의 길이기에 그 주님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하는 절절하고도 의지에 찬 고백이다. 목사님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찬양 가사 같아서 가사 한줄 한줄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목사님이 가끔 하시는 말씀 중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을 향해 가는 길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처럼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모습은 없다고 믿는다.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주위 환경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그를 존귀하게 한다. 잠언 말씀에도 나오지 않던가?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이 말씀은 단지 교회에 국한된 잠언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 걸쳐 적용되는 진리의 말씀이요, 사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 상황에서도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법조인은 법조인대로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에게 부여된 일을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멀지 않고, 정도를 따라 일하는 청지기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운 상황이다. 이것이 우리가 늘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신 이 나라가 더 나은, 더 아름다운, 더 성장하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비록 그 가는 길이 험난할지라도 우리는 그 수많은 난관을 헤쳐 오늘에 이른 역사적 저력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목사님은 목회자 세미나에서 오늘의 교회가 잠잠하다 못해 능력을 잃고 있다고 탄식하셨다. 70, 80, 90년대 그 많았던 부흥회들이 씨가 말랐고, 교회가 능력을 잃어 세상에 휘둘리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셨다. 이게 다 본연의 사명을 잃었거나 망각했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더욱 기도에 불을 붙이고 철 따라 기도원 집회, 기도성회, 나아가 세계 선교에 매진하시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기성교회 같으면 이미 은퇴하여 편히 쉬실 연세이지만, 목사님은 지금도 20대 청년의 기력을 달라 기도하시며 다음 주면 저 머나먼 지구 반대편 멕시코(Mexico)로 날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신다.
“100억, 아니 1,000억을 준다 해도 나는 가지 않습니다. 주님의 명령이기에 이 노구를 이끌고 가는 겁니다. 왜?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바람이, 눈보라가 내 앞길을 막아도 나는 이 길을 가는 겁니다. 나는 여러분이 다른 건 몰라도 주님 사랑하는 이 모습은 정말 나를 닮기 바랍니다.”
맡겨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께서 하명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생명조차 귀히 여기지 않고 이 길을 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날에 보상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목사님처럼, 이 땅에 부여된 사명에 부도내지 않기 위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저 약속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