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질서의 재편
세계 2차대전 당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를 포함한 서유럽은 130만 명 정도가 사망하였지만, 소련은 민간인 포함 2,660만 명이 사망하였고, 특히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은 독일군이 900일간 지속적으로 포위하여 이곳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 사건으로서 이를 탈환한 1월 27일을 기념일로 기억하며, 시내 주요 광장에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기념시설을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육로로 1,800km에 불과하고 대부분 평지였기에, 소련은 유럽의 침공으로부터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동유럽에 소련을 중심으로 한 위성정부를 수립하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은 최대한 통합하여 단일국가를 구축하였지만, 결국 1991년 12월 제국은 해체되고 약한 수준의 연방으로 재출발하였습니다.
소련이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던 80년대 초중반까지도 영국과 독일은 2차대전 종료 이전의 수준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영향력이 지대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특히 미국의 경우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생활에 제약이 있을 정도로 엄격한 수준의 기독교 국가였을 때, 하나님은 서방국가의 최대 위협이었던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의 민주화까지 실현하여 주셨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24년 2월 6일 미국 폭스뉴스의 대표 앵커였던 터커 칼슨(Tucker Carlson)과의 대담에서 소련 해체의 결행은 외세의 압박이나 체제경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내부적 비효율에 기인한 것이며, 또한 이행도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집행되었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푸틴 대통령의 전임이었던 옐친 대통령은 나토 가입에 대한 의사를 여러 번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했고, 푸틴 대통령 또한 집권 이후 클린턴 대통령에게도 동일한 의사를 전달했을 때, 클린턴이 수락 후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 번복을 통보하자 이후 러시아는 서방측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되 적대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없음은 명확히 하였습니다. 그러나 90년도 독일의 통일승인 과정에서 서방측은 통일 이후 독일에서 단 1인치도 동진
(東進)하지 않을 것이고, 동유럽 국가 또한 NATO 가입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확장하여 오다가 결국 우크라이나까지 중립지역으로 존속하겠다는 기존의 약정을 파기하고 전쟁 발발 이전부터 군사훈련까지 감행하자 러시아는 방어적 차원에서 선제적 공격이 불가피했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포퓰리즘적 다수결만 좇으며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다간 망하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만이 생존을 보장받는 길임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