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우리 선조들의 아침 문안 인사다. 요즘 이 인사의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하루가 멀다하고 세상을 떠나는 성도들, 지인들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통화까지 한 사람이 다음날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다. 하긴 40년 가까이 나와 함께 했으니….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 하고,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하셨으니 어쩌겠는가.
나는 생각이 깊다. ‘오늘 만난 사람, 내일 만난다는 보장이 없구나.’
하나님 말씀은 참 기묘하기도 하시지. 성경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고 하셨고,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고도 하셨지 않은가.
맞다. ‘내일’은 내 권한이 아니다. 과거는 부도난 수표요, 미래는 약속어음과 같아 불확실하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뿐!
어느 부자가 소출이 많자 창고를 헐고 큰 창고를 새로 지으리라 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에게 뭐하고 하셨는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12:20). 이 말씀은 내일이 없으니 오늘 먹고 마시고 놀라는 뜻이 아니다. 오늘이 중요함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현금처럼 주어진 오늘을 잘 활용해야 하고, 값지게 쓰라는 말씀이다. 지금 사랑하고, 베풀고, 나누고, 용서하고, 오늘 최선을 다하고, 오늘 충성하고….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3:27~28). ‘내일 줄게’ 하지 말라,
‘내일 사랑하지’ 하지 말라, ‘내일 해야지’ 말라신다. 왜? 내일은 네가 갈 수도 있고, 저 사람이 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 사랑하고, 베풀고, 일하고, 마지막인 것처럼 충성하자. 그러면 언제 가든지 후회 없는 삶이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