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가 되자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나귀 새끼를 타셨다. 그곳에는 힘이 좋고 경험이 많고 잘 길들여진 어미 나귀도 같이 있었으나 주님은 그것을 택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훈련되지도 않았고 다듬어지지도 않은, 보잘것없는 새끼 나귀를 택하셔서 자격을 주어 쓰셨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고전1:29)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겸손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고 주의 일을 할 때, 겉으로는 ‘예, 예’하면서 순종하는 듯해도 속에는 여전히 성질이 남아있고, 혈기가 남아있고, 교만이 남아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신앙이 점점 성장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그럴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사용해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고마워서 더욱 겸손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볼 때 자격이 없고 약점투성이인 자를 쓰신다고 하셨다
(고전1:27~28). 육체로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을 택하사 친히 자격을 주어서 쓰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훌륭하게 길들여진 어미 나귀를 놓아두고 새끼 나귀를 가져다가 쓰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할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자격을 주어 쓰시겠다 하는데 누가 감히 비판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우리가 잘 다듬어져서, 자격이 충분하여 목사로 또는 집사로 쓰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은 우리들에게 자격을 주어 사용하시는 것이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나는 새끼 나귀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내게 자격을 주셔서 사용하신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타고 가시던 새끼 나귀같이 겸손히 주님을 모시고 가야 한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오직 주님을 태운 나귀라는 사실만 명심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만 묵묵히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 나귀가 자기 앞길에 사람들이 겉옷을 펴주고, 나뭇가지를 펴주고, 게다가 호산나 찬송까지 한다고 하여, 그것이 자기를 위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기 등에 타고 계신 주님을 망각한 채 교만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귀는 오직 겸손히 주님만을 의식해야 한다. 그분의 인도대로 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공생애를 사신 것과 똑같이 우리도 각각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성도의 공생애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교단 임직을 축하드립니다!”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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