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는 내 삶의 적금통장이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4, 5만에 이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 6, 7천 채가 무너져 그 속에 매몰된 사망자는 20만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통계도 보고되고 있다. 전기, 가스, 물 등 생존에 필요한 기반시설들이 모두 셧다운된 상태인데다가 날씨마저 영하의 추위 가운데 그야말로 끔찍한 재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튀르키예로 말하자면 터키로 불리던 나라요, 우리가 73년 전 6·25전쟁을 겪을 때 16개 참전국 중 네 번째로 많은 군대를 보내온 고마운 나라이다. 지금 그 나라가 비탄에 빠져 고통 중에 있으니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적극 돕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우리는 원수의 나라 일본에 지진이 났을 때도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보냈었다. 역사적 구원(舊怨)이 있을지라도, 이념적 대립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 인간이 지녀야 할 당연한 도리 아니겠는가.
목사님은 튀르키예 강진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시면서 교단적인 차원에서 모두가 153구제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셨다.
“지금 함께 본 영상은 영화가 아닙니다. 실제 튀르키예 현지에서 발생한 지진 참사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아비규환의 생지옥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153구제운동을 통하여 아이티 지진 때에도 적십자사를 통해 구제헌금을 보냈고,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에 매달 구제헌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행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것은 크리스천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 이방의 나그네를 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는 예수님의 명령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이어 둘째 계명으로 강조하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또한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상인을 돌보아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진정한 이웃의 자세를 가르쳐주셨습니다(눅10:30~37). 야고보 사도는 헐벗고 굶주리는 형제에게 말로만 말고 행함으로 도우라고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5~17). 지금 현존하는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병으로 고통받는 자에겐 치료의 길로, 가난으로 고통받는 자에겐 부유의 길로 지금 당장 당하고 있는 현존하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제(救濟)의 한자를 보면 구원할, 치료한 구(救)에 건널, 도울 제(濟)입니다. 어려움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 구원하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형제는 위급한 때 필요하고(잠17:1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 말씀하셨습니다. 구제는 인생의 마르지 않는 샘이요, 내 삶의 적금통장입니다. 우리가 저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면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이 땅에 전쟁도, 지진도 없는 평강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모두가 153구제운동에 적극 동참합시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위해 기도하고 구제합시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