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3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초월적 에너지의 원천은 ‘사랑’과 ‘분노’라고 한다. ‘분노’라 함은 사실 복수심의 다른 표현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끔 인간의 복수심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변곡점을 만들곤 했다. 그러나 분노로 촉발된 에너지는 그 불이 소진되었을 때 더 이상의 추진력도 발휘될 수 없을뿐더러 그 후과(後果) 역시 좋은 적이 없다.
그러나 사랑으로 비롯된 에너지는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주위에 전염되고 선순환 효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지곤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전히 수많은 영혼들에게 울림을 주고 그 사랑의 전도자가 되기 위해 삶 전체를 드리는 일들이 계속되는 이유도 바로 그 사랑의 힘이라 생각한다.
목사님을 생각할 때 단 위에서 펼치는 사자후(獅子吼)의 모습에서 가끔 오해가 빚어지기도 하지만, 그분의 삶과 목회를 들여다보면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를 처음 만나고 본인의 삶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 삶의 목표나 지향점이 완전히 뒤바뀐 상황에서 아직 복음을 모르는 가족을 위해 눈물로 애통하셨다는 이야기나 자신의 실수로 인해 교회를 떠난 성도로 인해 금식하며 기도한 결과 다시 돌아온 성도를 보고 마치 예수님을 보는 듯 기뻐했었노라 말씀하셨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목사님의 성도에 대한 사랑은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다. 설교를 듣고 깨달은 성도가 결단하고 실천하여 잘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성도 본인보다 더 기뻐해주고 칭찬해주며, 또한 더 높은 목표와 비전을 바라보고 뛰라고 격려하신다. 나의 일을 두고 누군가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은 배가되고 에너지가 샘솟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연세에 스마트폰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시며 톡으로 들어온 상담들을 일일이 답변하시고, 어떻게든 성도의 문제, 병들었거나 고통받고 있거나 좌절하여 무너져있는 영혼들을 살리려 노심초사하신다. 그리고 그 성도가 기쁨을 되찾고 결단하는 모습에 마치 해산의 고통을 잊는 산모처럼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게 나의 양식(糧食)이라고 말씀하신다. 한밤중에 걸려 오는 전화, 그것도 특별한 내용도 없이 반복되게 걸려 오는 전화임에도 목사님은 예수님을 생각하며 받는다고 하신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명제를 늘 염두에 두고 실천하시는 모습이다.
그런 목사님을 보며 내린 결론, 목회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영혼에 대한 사랑 없이는 결코 수행할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두려움, 그리고 영혼에 대한 사랑, 목사님이 지금까지 변함없는 길을 걸어가시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교회에 들어와 일한 지 31년이 되었고 목사님을 수행하며 지근거리에서 목사님을 바라보게 된 지는 20년이 좀 넘었다. 지금까지 목사님과 일하며 단 한 번도 권위를 앞세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권위보다는 일의 가치를 강조하셨고, 때론 솔선수범으로, 또 때로는 인내로 기다려주시곤 했다. 일의 가치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가끔 부대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목사님의 일에 대한 태도와 철학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은 부단한 자기와의 싸움, 원칙의 실행, 목회 38년을 이어오시며 더욱 견고해진 하나님 대한 지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지난 추계산상집회 마지막 집회에서 목사님은 85세에 헤브론을 달라했던 갈렙처럼 다시 한번 세계를 맡겨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전 삶과 영혼까지 하나님께 드리며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 영혼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나아가려는 젊은이 못지않은 기백과 패기였다. 그 연세에 세계를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에 목사님의 사랑과 그 열정의 강도를 가늠하고도 남는다. 부디 그러한 목사님의 목표와 비전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40대의 기력을 주시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