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삶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삶
“엄마! 하나님이 진짜 우리 기도를 들으셨어요!” 학교를 마친 아들이 몹시 신이 나서 뛰어나왔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이사 오기 전, 아이가 전학 갈 학교에 축구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알아보니 아이가 원하는 축구부는 없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알아보니 지금은 축구부가 없어.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 그 학교에 축구부가 생기게 해주세요!”라고 말해줬다. 전학을 와보니 역시나 축구에 관련된 활동은 전혀 없었고, 격주로 하는 동아리 활동도 이미 다 배정이 된 상태라 아이는 선택권이 없이 미술부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첫날 아침,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놀라운 얘기를 하셨다. “오늘부로 축구 동아리가 새롭게 생겼어요.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손드세요.” 오매불망 기도하며 기다렸던 소식에 아들은 당연히 손을 번쩍 들었고, 많은 희망자 중 세 명에 뽑혀 기도한 대로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담당 체육 선생님께서 축구를 좋아하시는 덕분에 체육 시간에도 반 친구들과 신나게 축구를 즐기며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교회 체육대회에서도 이어졌다. 당일이 가까울수록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전날 밤에도 천둥 번개까지 동반하며 비가 왔다. 예배 때 모두가 합심기도까지 했지만 결국 당일 아침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천막을 치고 물품을 세팅하는 시간에 비는 오히려 더 세차게 내리는 듯했다. 비를 맞으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시던 목사님은 성도님들과 합심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마음을 합하여 간절히 기도하던 그 시간,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일하셔서 우리는 모두 기쁜 마음으로 체육대회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 목사님은 “가장 위대한 자는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자다!”라고 지금까지 외쳐오신다. ‘이런 것까지 굳이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쩨쩨한 분이 아니라 세밀하시고 자상하신 분이라고 가르치신다. 안된다고 원망 낙담하기 전에, 할 수 없다는 부정에 지지 말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앞에 작은 일도 진실로 기도하고 의지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맛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자.
이국진 사모
팔자를 넘어선 삶
우연히 부모님을 통해서 이 삶을 시작했다. 우연히 그 동네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정말 우연히 좋은 가정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가고 싶은 대학엔 못 가고 우연히 다른 대학에 가게 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좋은 직장에 지원해 근무하게 됐고, 우연히 전학해 온 고등학교 친구의 동생을 알게 되어 결혼했다. 우연히 회사를 하게 되어 운영하다가 우연히 예상 못한 불행을 만나 회사를 접게 되어 신학교를 가게 되었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우연인 것 같아도 필연이다. 우연의 연속은 필연이다. 그 모든 것을 결정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사주팔자와 점성술은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운명을 점친다. 예정된 삶, 하나님의 진리로 만들어진 삼라만상의 비밀을 풀기 위한 인간의 노력들이 주역 등 역학과 점성술 등으로 결집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이 모든 노력들이 하나님의 예정을 알기 위한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하나님의 예정설과 개인의 자유의지는 서로 상충하는 난제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정해 놓은 예정은 인간의 의지로 완성된다. 그 예정을 이루기 위해 자유의지를 지닌 나의 노력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내가 머무르는 것이 팔자를 넘어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요점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변치 않되 그 뜻을 이루는 계획에 내가 참여하는 것이 내 자유의지로 내 팔자를 넘어서는 통로가 된다. 에스더는 자유의지로 주님의 편에 섰다(에4:13~16).
미국의 남북전쟁 중에 양측 리더 모두 크리스천이었다. 하나님은 누구의 편인가 묻자 링컨 대통령은 ‘나는 항상 내가 하나님 편에 서려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죽음까지도 불사한 에스더와 링컨의 지혜에 감탄한다. 내가 하나님 편이면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니 될 수가 없다(시118:5~6).
에스더와 링컨은 위기 앞에서 죽음도 불사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예정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자유의지이다.
하나님의 선한 예정과 계획에 내가 순응하는 것, 그것이 팔자를 벗어나 주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비밀이다.
이광주 목사
철저하게 준비하라
목사님은 늘 ‘철저하게 준비하라, 준비하지 않은 인생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미국에서 7년간의 트럼펫 연주학 박사학위 취득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도 미리미리 철저한 준비와 계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국내 명문 음대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시각장애인들로만 구성이 된 시각장애인 음대를 나왔습니다. 그 음대는 2년제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시각장애인 전용 음대에서 2년간 열심히 공부하면서 매일같이 오후 시간마다 제가 쓴 편지를 가지고 택시를 타고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를 찾아갔습니다. 왜냐고요? 안내데스크 직원분에게 제 편지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에게 꼭 좀 전하여 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제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에게 쓴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문화체육부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살고 있으며, 현재 시각장애인 전문 음대 2년제 과정을 밟고 있는 스무 살 윤영광 학생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제가 장관님께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가 믿는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며, 장관님의 마음도 감화 감동시키실 것을 믿고 이 편지를 씁니다. 장관님, 저는 태어날 때 미숙아로 태어나서 3개월간 인큐베이터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저를 관리 담당하시는 간호사 선생님의 실수로 시각장애가 생겼습니다. 눈에 안대를 채운 상태에서 인큐베이터로 들어가야 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제 눈에 안대로 채우지 않는 실수를 하셔서 저는 두 눈이 다 빛에 의해 시신경과 망막이 타서 다 녹아내리는 의료사고를 당해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장관님, 그러나 저는 저를 이렇게 만드신 간호사 선생님을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덕분에 예수를 믿게 되었거든요.
장관님,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오직 단 한 가지입니다. 현재 저는 시각장애인 전문 음대에서 트럼펫을 전공하고 있으며 성악을 부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비장애인들이 가는 일반 음대 대학원 트럼펫 연주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해외 유학의 길을 통해 취득하길 원합니다. 장관님, 저의 집안 형편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부모님 모두가 다 일용직으로 일하고 계셔서 저를 뒷바라지하실 형편이 전혀 안 됩니다. 장관님, 저는 장관님께 이 편지를 보내드리기 전에 하나님께 200일간 작정기도를 하였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께서 200일간의 작정기도 끝에 장관님께 편지를 써서 보내라는 감동을 주셨고, 이를 실행에 옮기면 유학을 통하여 트럼펫 연주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장관님, 저를 증빙할 백 다운 백, 서류다운 서류는 오직 예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제 담보시며, 하나님이 저의 백이시며, 하나님이 저의 증빙 서류이십니다. 장관님, 제가 해외 유학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제가 믿는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장관님께서 저를 도와주신 것이 최고의 선택, 최고의 보람으로 길이길이 남을 수 있도록 증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장관님과 장관님의 가정과 문화체육관광부에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제가 그 당시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저 윤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 뉴욕에서 받는 교육이며, 학비는 물론 각종 생활비까지 다 대한민국 정부 부서인 보건복지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제가 미리미리 기도로 준비하며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물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며 준비하는 삶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기회는 준비한 자의 것입니다. 할렐루야!
윤영광
소중한 당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부모를 잃은 슬픔과 자식을 잃은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클지.
나는 여러 강연에서 들었던 말들을 빌려 대답했다. 부모는 아이의 우주이기 때문에 자신의 우주를 잃은 것과 같고, 성장했을 때에도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큰 기둥이, 큰 보호막이 사라진 것 같은 슬픔이라고. 그리고 자식을 잃은 슬픔은 자신의 모든 삶이 무너져내린 것과 같아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도, 앞으로의 삶을 살아내기도 어려운 슬픔이라고. 어느 기사에서도 보았는데 사람이 겪는 스트레스 수준을 순위별로 나열했더니, 1위가 자녀의 사망, 2위가 배우자의 사망, 3위가 부모의 사망이기도 했다. 이에 자녀가 있는 나로서도 후자가 클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하나님의 그 큰 슬픔도 해가 빛을 잃어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지진이 일어나며 성소 휘장이 찢어지는 것으로 표현된 것 같다. 물론 부활하실 것을 아셨겠지만, 자신의 독생자를 사망으로 내어주는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3일 후에 다시 살아난다는 보장이 있더라도 자기 자녀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고통을 겪을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그 모든 고통과 슬픔을 견디셨다. 그 정도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 귀하고 소중해서. 설령 현재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신앙과 상관없이 당신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이에 그 귀하고 소중한 영혼을 천국으로 이끄는 것 또한 믿는 자들의 사명인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느꼈을지라도,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매우 소중하고,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삶 또한 참 소중하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박찬영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