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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너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잠24:16)

1176호 · 2022-11-20

‘세일즈맨은 거절당했을 때부터 뛴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절당했다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절이 오히려 오기와 패기를 낳고, 다시 거절당하지 않는 방법을 구상하기 때문입니다.

넘어졌을 때, 거절당했을 때,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실패했을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이제 끝이다.’ 생각하고 포기합니까? 아니면 ‘될 때까지 도전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24:16). 이 말인즉 살다 보면 넘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곧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안 넘어지는 게 성공이 아니라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고, 재도전하는 것이 승리라는 것입니다.

“마귀도 포기하지 않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포기하냐?” 제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아이가 걸으려면 3,000번 이상 넘어진다고 합니다. 한 번 넘어지고 아프다고, 무섭다고 안 걸으면 평생 못 걷습니다. 살면서 넘어질 수 있지요. 살면서 실패할 수 있고, 낙방할 수 있고. 실연당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주저앉습니까? 챔피언도 권투 시합하다 보면 한 방 맞고 다운될 수 있는 겁니다. 다운되었다고 시합에 지는 게 아닙니다. 못 일어나면 K.O로 지지만, 다시 일어나면 시합은 계속되고, 기회가 왔을 때 4전 5기의 홍수환 선수처럼 한 방 날리면 만회할 수 있고, 마침내 이길 수 있습니다. 야구에서 9회 가 되도록 지고 있다고 완전히 진 게임입니까? 심기일전해서 9회 말에 만루홈런 한 방 날리면 역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포기합니까?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성공사례입니다. 어떤 도시의 한 과부가 자신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한 재판관에게 자주 찾아가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관은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사람을 아주 우습게 아는 데다가 하나님도 무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과부는 그 재판관을 매일 찾아갔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멸시 천대를 받았겠습니까? 그래도 과부는 매일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그 못된 재판관이 그 과부에게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태어나서 당신 같은 여자는 처음 봤다. 징그럽다. 내가 해결해줄 테니 제발 그만 와라.”고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비유를 하셨는가 하면 이 비유의 첫머리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눅18:1)이라고 말씀하셨듯이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넘어지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넘어지면 일어나 다시 도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도 할까요? 그녀는 귀신 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를 개로 비유하며 일찌감치 손 털고 가라 하셨습니다(막7:27). 아마도 이쯤 되면 자존심이 상해서 99.9%가 다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도전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그녀의 강한 도전의식을 보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며 그녀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그렇습니다. 12년이란 세월이 절대 짧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다 없어지고, 가족들도 포기했지만 낫겠다는 그녀의 의지만은 꺾지 못했습니다. 만일 ‘이게 내 운명이다, 내 팔자다’ 하고 포기했더라면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계속 도전하고 도전하니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막5). 누가복음 11장에 친구에게 떡을 구하는 자의 결말도 재도전이 이룬 쾌거가 아닐까요?

또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키는 평균 이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거리로 나갔지만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키가 작은 걸 어쩌겠어. 그냥 들어가자.’ 하고 포기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기필코 정신으로 뽕나무에 올라가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시고 예수님은 그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한 자가 그 과부 하나였겠습니까?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그 여인뿐이었겠습니까? 자존심을 밟힌 자가 수로보니게 여인 하나였겠습니까? 키 작은 사람이 삭개오 하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정신이 남달랐기에, 그들의 생각이 ‘이루고야 말겠다’ 했기에 성경에 믿음의 인물로 기록된 것입니다.

언젠가 김정태 장로가 “목사님, 음식이 맛있으려면 원자재가 좋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싱싱하지 못한 고등어로는 맛있는 고등어조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원자재가 뭡니까? 바로 생각과 말입니다. 생각과 말이 좋아야 맛난 인생이 됩니다. 부정의 생각으론 맛난 인생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도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7:18).

요즘 저는 생각할 것이 많을 때면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그림은 생각대로 나옵디다. 제가 강렬하게 그리겠다 생각하니까 빨강 파랑 등 원색을 택하게 됩디다.

가나안을 정탐하러 간 12명, 그들은 같은 상황을 보고 그림을 그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똑같은 크레파스 한 통씩 놓였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10명은 어둡고 칙칙한 색을 골라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밝은색을 골라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것은 다 각자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들의 생각대로 결과가 나왔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렘6:19). 여러분, 우리 안에는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의 산실이요, 하나는 부정의 산실입니다. 긍정의 산실은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부정의 산실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방에 자주 들어가십니까? 어떤 방을 자주 이용하십니까? 저는 아예 부정의 산실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완전 초긍정으로 살았기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우리, 이제라도 말과 생각을 리모델링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지저분하고 낡은 집도 리모델링 하니까 멋지게 됩디다. 생각이 리모델링 되면 말이 리모델링 되고, 그것이 삶을 리모델링 합니다. 멋진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성공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잡고 생각을 바꿉시다.

과테말라 집회를 마치고 귀국 길에 미국의 애틀랜타를 경유했습니다. 시간을 잠시 내어 애틀랜타의 한 골프하우스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놓인 조각상이 마음에 들어 팔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제자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전시용 조각품을 누가 팔겠어?’라면서 안 팔 거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제가 가서 계속 물어보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물어봤는데 주인이 안 판다고 했습니다. 그가 와서 “거봐요, 안 판다잖아요.” 하기에 “네 생각에 이미 안 판다고 했으니 팔 리가 없지.”라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다음날 또 그곳에 갔습니다. 사람들이 왜 가냐고 해서 “어제는 안 팔았어도 오늘은 팔 거야.”라고 했더니 다들 안 파는데 괜한 고생한다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다음날 그곳에 가서 그 제자 목사를 통해 제가 누구인지 유튜브를 보여주면서 팔 것인지 다시 물어보라 했는데, 어제는 안 된다던 주인이 판다는 게 아닙니까. 그럼요, 어제 안 되던 것도 오늘은 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하지 않은 겁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면서 2천 번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구하여 마침내 그것을 발명해냈고, 링컨도 많은 실패를 인내하여 마침내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포기는 여러분의 인생을 갉아먹는 좀이니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할렐루야!

내 생각이

내 삶을 좌우한다

생각이 말을

말이 인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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